매년 우리나라에서만 600명이 넘는 농부들이 크고 작은 농약 중독 사고를 당한다. 농기계를 다루다가 전복, 추돌 사고를 당하는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생긴다. 업계에 따르면, 농기계의 치사율은 자동차 교통사고 치사율의 8배에 달한다고 한다. 매우 덥거나 추운 날, 논밭에서 일하던 농부들이 다치는 사고도 꾸준히 일어난다. 이들 사고는 인명 피해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농작물 생산성까지 떨어뜨린다.
조경식 에이지로보틱스 대표는 늘 이것이 안타까웠다. 방위산업 업계에서 15년 이상을 일한 그는 ‘로봇’을 도입하면 농촌에서 일어나는 사고의 상당수를 방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조경식 에이지로보틱스 대표. 출처 = 에이지로보틱스
사람 대신 로봇이 농약을 뿌리면 중독 사고가 일어날 일이 없다. 로봇은 튼튼하므로 덥거나 추운 날에도 일한다. 인공지능, 자율 주행 등 정보 통신 기술을 더하면 로봇의 활용 범위는 더욱 넓어진다. 농부를 따라다니며 과일을 따고 퇴비를 뿌리는 등 작업 효율을 높인다. 농약 살포를 비롯한 위험한 작업도 대신한다.
에이지로보틱스는 과수 농장 지원 로봇을 ‘모듈형’으로 설계했다. 기본은 자율 주행 로봇이지만, 본체 위에 어떤 모듈을 장착하느냐에 따라 성능과 쓰임새가 바뀐다.
에이지로보틱스 과수 농장 지원 로봇 프로토타입. 출처 = 에이지로보틱스
‘농약 살포 모듈’을 장착하면 과수 농장의 지형을 스스로 인식해 자연스럽게 이동하며 골고루 농약을 뿌린다. ‘수확 모듈’을 장착하면, 무인 잠수정 기술이 적용된 로봇 팔이 섬세하게 움직여 포도, 사과를 다치지 않게 따서 차곡차곡 저장한다. ‘퇴비 운반 모듈’도 있다. 지금까지는 농부가 하던 세 가지 일, 농약 살포와 수확과 퇴비 운반을 대신하는 셈이다.
조경식 대표는 로봇에 바퀴와 무한궤도를 적용, 논밭이나 과수 농장을 무리 없이 누비도록 설계했다. 로봇에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을 더해 농부들이 스마트폰이나 PC로 로봇의 상태를 확인하고 간편하게 점검하도록 했다. 농약을 어느 부분에 얼마나 뿌렸는지, 과수 농장의 어느 곳에서 작업했는지를 데이터로 기록하고 분석하는 기능도 있다. 이 과정들을 일원화한 관제 시스템도 구축했다.
에이지로보틱스는 과수 농장 지원 로봇에 GPS(위성 위치확인 기능)와 2D 카메라, 라이다(Lidar, 레이저 거리 측정 기술) 3D 매핑 기능을 넣었다. GPS로 로봇의 위치를 파악하고 3D 매핑 기능으로 넓은 지역의 지형을, 2D 카메라로 가까이에 있는 장애물과 지형을 인식하는 원리다. 덕분에 이 로봇은 험준한 지형, 과수 농장이나 논밭을 누비며 일한다.
에이지로보틱스 과수 농장 지원 로봇 실증 실험 현장. 출처 = 에이지로보틱스
그럼에도 자율 주행은 정말 만들기 어려운 기술이라고 조경식 대표는 말한다. 과수 농장을 비롯한 농지는 높낮이가 고르지 않고 거칠며 돌과 잡초 등 장애물이 많다. 무한궤도에 돌이 끼거나, 고랑에 빠져 로봇이 뒤집어질 우려가 있다. 조경식 대표는 이를 줄이려 한국생산기술연구원과 인공지능 환경 인식 알고리즘을 연구한다.
로봇의 간편 유지보수 방안도 마련했다. 로봇에 이상이 생기면 통합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바로 감지하도록 했다. 사용자가 손쉽게 로봇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상태 점검 앱을 제공할 예정이다. 에이지로보틱스가 원격으로 로봇을 진단하고 간단한 고장을 고쳐주는 기능도 개발한다.
왜 로봇일까? 농약 살포나 수확에 최근 유행하는 ‘드론’을 쓰면 더 간편하지 않을까? 조경식 대표는 고개를 젓는다. 현장에 있는 농부들의 목소리를 꼭 들어야, 농업 환경에 가장 알맞은 기술을 적재적소에 공급 가능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과수 농장 지원 로봇을 연구 중인 에이지로보틱스 연구진. 출처 = 에이지로보틱스
과수 농장에서는 드론을 쓰기 어렵다. 포도 농장은 당도를 높이려 나무 위에 비닐을 씌운다. 따라서 공중에서 농약을 살포하면 효과가 없다. 사과를 비롯한 몇몇 작물은, 잎의 위가 아니라 아래에 농약을 뿌려야 한다. 이 역시 공중에 떠 있는 드론으로는 할 수 없다. 게다가 드론은 작업 시간이 30분 이내로 짧고 농약 적재량도 많지 않다. 추락 우려도 있다. 따라서 과수 농장에서는 드론보다 로봇이 더 많이 활약한다.
조경식 대표는 에이지로보틱스의 과수 농장 지원 로봇을 쓰면, 연간 1,500만 원쯤의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1,000평 과수 농장에 농약을 살포할 때, 단 4시간 만에 작업을 마칠 정도로 효율도 좋다. 로봇 한 대를 1년 내내 쓴다는 장점도 있다. 과수 농장 기준 3월~8월 방제 기간과 9월~10월 수확기, 11월 퇴비 처리 시기에 모두 활약한다. 지금까지는 방제와 수확, 퇴비 처리 시기에 각기 다른 농기계를 써야 했다.
에이지로보틱스 과수 농장 지원 로봇 예상도. 출처 = 에이지로보틱스
무엇보다 에이지로보틱스의 과수 농장 지원 로봇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안타까운 인명 사고를 없앤다. 작업 효율과 수확량도 높인다.
에이지로보틱스는 과수 농장 지원 로봇을 일반 농가뿐 아니라 농업기술센터와 농촌 지자체, 공공조달 부문에 공급할 예정이다. 나아가 중장기 계획으로 더 고도화된 과수 농장 지원 로봇을 개발하고, 이를 스마트팜과 연계해 종합 농업 지원 시스템 구축을 시도한다. 로봇과 스마트팜의 융합 주제로 농촌진흥청의 국책 사업도 한다.
조경식 대표는 고향인 경북 영천의 과수 농장주 가운데 70% 이상이 60대 이상 노년층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이들 대부분이 소규모 농가다. 고된 과수 농사를 혼자 짓다가 농약 중독이나 농기계 사고가 나 다치는, 안타까운 일이 매년 반복된다. 트랙터나 콤바인 등 고가의 대형 농기계는 있어도, 이들을 도울 중저가의 농업 로봇은 거의 없다.
에이지로보틱스 임직원들. 출처 = 에이지로보틱스
이를 토대로 에이지로보틱스는 곧, 앞으로 수 년 내에 농기계 로봇 혁신이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다. 농기계 대기업이 중저가 농업 로봇의 가능성을 파악해 시장 규모를 키우면, 그 때부터는 본격적인 기술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조경식 대표는 이 때를 대비해 기술을 쌓는다. 로봇 특화 기능과 시스템의 이해, 인공지능을 담아 만든 차별화된 로봇으로 승부를 건다. 농가의 목소리를 듣고 현장에서 위력을 발휘할 만한 기술도 갈고 닦는다. 비전 센서로 잎의 위치를 포착하고 적정량의 농약만 뿌리는 살포량 조절 기능이 예다. 이 기능은 농약 구매 비용을 줄이고 나아가 토양 오염도 막는다.
조경식 대표는 “로봇을 많이 만들기보다는 언제 어디서나 정확히 움직여 성과를 내는, 똑똑한 로봇 한 대를 만들어 공급하고 싶다. 과수 농장 농부들의 목소리를 듣고 이들의 불편을 해소할, 농부들이 다치지 않게 보호하면서 효율을 높이는 로봇을 만드는데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동아닷컴 IT 전문 차주경 기자 racing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