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하나로마트에서 시민들이 배추와 무 등 김장용품을 살펴보고 있다. 최근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아 배춧값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9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은 3.7% 상승률을 나타냈다. 반면 국민총소득(GNI)은 5개 분기 만에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국민 호주머니는 비었는데 물가가 오르니 소비 여력은 떨어지고, 경기 회복세도 꺾이고 있다. 경기 둔화 속 물가 상승을 뜻하는 ‘슬로플레이션’ 우려마저 커졌다.
체감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지난달 5.2%나 올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크게 앞질렀다. 채소나 육류부터 공공서비스와 석유류까지 안 오르는 게 없을 정도다. 취약계층은 생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너무 올라 장보기가 겁나고, 치솟은 난방비 탓에 겨울나기가 걱정인 처지다.
국민의 실제 호주머니 사정을 반영하는 GNI는 3분기 0.7% 감소했다. 소득은 주는데 이자와 집세 등 나갈 돈은 많다. 미래가 불안하니 그나마 있는 돈도 쓰지 않는다. 3분기 소비 성향(처분가능소득 대비 소비지출 비중)은 역대 최저로 떨어졌다. 불안감이 지갑을 닫게 만들고, 이는 다시 경기 둔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가 꺾이면 투자와 일자리가 줄고, 취약계층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공급망 위기에 오미크론 변이까지 겹치면서 글로벌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다. 국내 경기는 회복세가 꺾여 올해 성장률 목표 4% 달성도 쉽지 않다. 슬로플레이션이 가시화하면 취약 가계는 버틸 수 없다. 정부는 607조 원의 ‘초슈퍼 예산’을 편성했지만 선심성 돈 풀기로는 서민 살림을 떠받치는 데 한계가 있다. 복지 사각지대가 생기지 않도록 저소득층 보호대책부터 서둘러야 한다. 예산 집행 과정에서도 구조조정을 통해 취약 계층을 집중 지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