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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카멜레온’ 숄츠, 실용주의 무장… “난 메르켈과 꽤 달라”[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1-12-04 03:00:00

‘포스트 메르켈’ 시대 여는 숄츠 獨총리 후보자
열정적 사회주의자였던 ‘기계인간’
좌우 넘나드는 실용주의… 메르켈 정책에서 좌회전 예고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사회민주당 청년조직 ‘유조스’ 회의에서 연단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는 올라프 숄츠 신임 독일 총리 후보자. 그는 17세에 사민당에 가입했고 본인과 배우자 모두 유조스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젊은 시절부터 정치 경력을 쌓았다. 프랑크푸르트=AP 뉴시스


“메르켈 총리와 비교되는 것이 나쁘지는 않지만 나는 그와 꽤 다르다.”

‘남자 메르켈’ ‘기계인간’ ‘정치 카멜레온’ 등으로 불리는 올라프 숄츠 차기 독일 총리 후보자(63)가 6∼9일 중으로 예정된 연방하원 표결을 통해 제9대 독일 총리에 오른다. 2005년부터 16년간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을 이끌며 자유세계의 지도자 역할까지 했던 중도우파 기독민주당 앙겔라 메르켈 총리(67) 시대가 끝나고 중도좌파 사회민주당 소속인 숄츠가 ‘독일호’의 새 선장이 되는 것이다.

지난달 24일 좌파 녹색당, 우파 자유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한 그는 연정 합의문을 통해 기후변화 대응 강화, 최저임금 인상, 투표연령 하향, 대마초 합법화, 장기 거주 난민에 시민권 부여, 대(對)중국·러시아 강경 노선 등을 취할 뜻을 밝혔다. 메르켈 정책에서 ‘좌회전’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런 변화가 독일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과 국제 정세에도 상당한 파장을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열정적 사회주의자

숄츠는 1958년 서독 니더작센주 오스나브뤼크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그의 조부는 철도 노동자, 부모는 섬유 공장의 노동자였다. 숄츠는 집안에서 대학에 간 첫 번째 인물이다. 어린 시절 북부 항구 도시 함부르크로 이사했고 사민당 지지세가 강한 이곳에서 자연스레 사민당 정치인의 꿈을 키웠다.

숄츠는 17세인 1975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사민당에 가입했다. ‘젊은 사회주의자들’이란 뜻의 사민당 청년조직 ‘유조스(Jusos)’에서 활동하면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다. 특히 양극화 문제에 비판적 시각을 가졌다. 독일 dpa통신은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난 숄츠는 고교생으로 사민당에 입당할 정도로 열정적인 사회주의자”라며 “그에겐 여전히 당시 성향이 상당 부분 남아있다”고 전했다.

1978년 함부르크대 법학과에 입학한 그는 1985년부터 노동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주로 공장 폐쇄로 생계를 위협받는 노동계층을 변호했다. 특히 1990년 통일 이후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독 노동자들이 대규모 해고 등의 어려움을 겪자 해당 기업의 직장 노조와 연계해 노동자들을 보살폈다.

1998년 연방의회 의원이 된 그는 메르켈 총리가 처음 집권했던 2007∼2009년 사민당 몫으로 배정된 노동사회부의 장관을, 2011년부터 7년간 정치적 고향 함부르크에서 시장을 지냈다. 2018년 3월부터 현재까지 메르켈 4기 내각에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을 맡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재정 투입 확대 등을 주도했다.

그는 재무장관 시절 월 1만5500유로(약 2065만 원)를 받았고 순자산은 약 200만∼500만 달러로 추정된다. 슐츠는 8월 시사매체 ‘분테’ 인터뷰에서 자신을 ‘부자’로 칭했다. 그는 “나는 부자다. 매년 20만 유로의 연봉을 받으면 부자”라며 “납세자의 부담을 줄이려면 나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남다른 아내 사랑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사민당 동료인 아내 브리타 에른스트(60)다. 함부르크 태생의 에른스트는 1978년 사민당에 가입했다. 1980년대 중반 유조스에서 숄츠를 만났고 곧 연인이 됐다. 당시 운동을 싫어하고 내향적인 성격이었던 숄츠가 활발한 성격에 달리기, 조정, 자전거 타기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기는 에른스트에게 먼저 반했다는 후문이다.

둘은 1998년 결혼했고 아이는 없다. 숄츠는 언론 인터뷰에서 수차례 남다른 아내 사랑을 과시했다. 분테 인터뷰에서 ‘아내에 대한 사랑이 정치적 성공보다 중요한가’란 질문을 받자 “물론이다”라고 답했다. 아내가 운동하기 귀찮아하는 자신을 스포츠에 입문시켰고 이제 스스로 일주일에 서너 번 운동을 즐기게 됐다고도 했다.

독일에서 에른스트는 ‘숄츠의 아내’보다는 한 사람의 독립 정치인으로 더 유명하다. 그는 사민당 소속 연방의회 의원들의 보좌관, 함부르크 시의회 의원 등을 거쳐 수도 베를린 인근 브란덴부르크주의 교육·청소년부 장관, 문화부 장관 등을 지냈다. 시사매체 슈피겔은 남편이 총리가 돼도 그가 전형적인 총리 배우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독립적인 정치 경력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결혼 후에도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고 있다.

일간 빌트는 숄츠가 2011∼2018년 함부르크 시장을 지낼 때 에른스트 또한 시의회 의원이었지만 그가 ‘시장 부인’ 역할보다 자신의 의원 업무에 충실했다고 평했다. 9월 총선 유세 당시에도 활발히 배우자의 선거운동을 도운 다른 당 대표의 아내와 달리 에른스트는 유세 현장에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숄츠는 7월 여성잡지 ‘브리기트’ 인터뷰에서 ‘당신이 총리에 오르면 아내는 어떻게 되는가’란 질문을 받고 “그런 질문은 나를 화나게 한다. 그는 ‘누구의 아내’가 아니라 훌륭한 정치인으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 기계인간

숄츠의 별명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숄초마트(Scholzomat)’, 즉 기계인간 숄츠다. 그의 이름에 로봇, 자동화 등을 뜻하는 단어 ‘아우토마트(Automat)’를 합친 단어로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침착하고 냉정한 태도가 기계 같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실제 그는 정치 인생 내내 진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이미지가 강점이지만 동시에 정치인으로서 공감능력, 친화력, 카리스마 등은 약하다는 평가를 들어왔다.

이 별명이 붙은 시점은 2003년.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수백만 명의 실업자 등으로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 경제를 살리려면 해고기준 완화, 실업수당 및 의료보험 축소, 시간제 일자리 대거 도입 등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슈뢰더는 사민당 소속임에도 ‘하르츠 개혁’이란 이름이 붙은 대대적인 노동 개혁을 추진했다. 이때 당 사무총장이던 숄츠 또한 청년 시절 자신의 정치성향과 다른 노동유연화 정책을 입안하고 홍보해야 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그의 정치성향 변화 및 하르츠 개혁의 문제점을 집중 추궁했다. 그때마다 숄츠는 무표정한 얼굴로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때문에 ‘로봇 같다’는 평이 나왔고 평생 별명으로 굳어졌다.

다만 그는 2007∼2009년 노동사회부 장관으로 복귀한 후에는 실업급여 장기 지급 등 다시 노동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폈다. 이런 그를 두고 NYT는 ‘정치적 카멜레온’ 같은 존재라며 “좌우 정책을 모두 펼쳐 정확한 입장을 알 수 없는 정치인”이라고 평했다. 공영방송 도이체벨레 역시 “젊은 시절에는 급진적 사회주의자였지만 변호사, 의원 등을 거치면서 기업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고 중도 성향도 강해졌다”고 진단했다.

○ 남자 메르켈

침착하고 신중한 언행, 소박한 생활 태도, 무자녀 등 숄츠와 메르켈 총리는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메르켈은 네 차례 임기 중 2기를 제외한 세 차례 임기에서 모두 사민당과 손을 잡고 연정을 구성했다. 숄츠 또한 메르켈 1기와 4기 내각에서 장관을 지냈다.

즉, 당적은 다르지만 숄츠는 메르켈 정권의 재무장관으로서 메르켈의 유산을 계승할 수 있는 자연 상속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또한 “메르켈의 은퇴가 달갑지 않은 독일인은 본능적으로 메르켈과 가장 닮은 총리 후보를 찾았고, 숄츠가 그 요구에 부합했다”며 “그는 사실상 ‘남성 메르켈’”이라고 평했다. 유권자들이 7월 대홍수 피해 현장에서의 파안대소 등 다소 경박한 언행으로 물의를 빚은 아르민 라셰트 기민당 대표보다 숄츠로부터 메르켈의 향수를 더 진하게 느꼈다는 것이다.

2019년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 오사카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에서 세 번째), 올라프 숄츠 신임 독일 총리 후보자 겸 당시 재무장관(왼쪽에서 두 번째)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숄츠 후보자는 지난달 24일 발표한 연정 합의문에 신장위구르, 대만 문제 등을 거론하면서 메르켈 시기의 친중 정책과는 다른 노선을 취할 뜻을 예고했다. 사진 출처 페이스북 

메르켈 또한 10월 말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는 물론이고 G20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양자 회담에도 차기 총리 숄츠를 동반했다. 그가 자신의 후임자임을 만천하에 알리고 국제사회에 독일 외교정책의 연속성이 이어질 것임을 강조한 셈이다.

메르켈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등 프랑스 대통령과 특히 가깝게 지내며 EU 체제의 수호자를 자처했다. 그와 사르코지의 이름을 합한 ‘메르코지’, 그와 올랑드의 이름을 합한 ‘멜랑드’란 용어도 나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 또한 지난달 3일 메르켈을 유명 와인 산지 부르고뉴의 고성으로 초청했다. 미슐랭 3스타 요리사인 요한 샤퓌가 만든 만찬을 즐긴 후 마크롱은 메르켈에게 최고 훈장 ‘레지옹도뇌르 그랑크루아’를 수여하며 “언제나 친구로 남아 달라”고 했다. 메르켈 또한 눈시울을 붉히며 마크롱을 포옹했다.

숄츠 또한 재무장관 재직 내내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무장관과 가깝게 지냈다. 둘은 코로나19 사태 후 EU 경제 회복을 위한 EU 공동채권 발행 등을 주도했다. 지난해 3월 프랑스의 코로나19 환자가 급증하자 독일 공군은 의료수송기로 프랑스 환자들을 슈투트가르트의 독일 군병원으로 실어 날라 치료했다. 이를 주도한 사람이 바로 숄츠의 동생이자 마취과 의사인 옌스(62)였다. 르메르 장관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의대 병원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한 옌스에게 “당신과 당신의 형에게 감사한다. 독일은 프랑스의 휼륭한 가족”이라고 치하했다. 르몽드는 메르켈의 은퇴로 독일과 프랑스의 긴밀한 관계가 끝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지만 숄츠의 취임으로 그 관계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 코로나19·외교·연정 내 이견 등 과제도 산적

총리 숄츠의 미래가 밝은 것만은 아니다. 오미크론 변이 등으로 끝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19 대유행, 연일 서방을 위협하고 있는 러시아, 독일의 최대 교역국이지만 인권탄압 등으로 사사건건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과의 관계 재정립 등 난제가 상당하다.

각각 새 내각의 외교장관과 재무장관이 된 아날레나 베어보크 녹색당 공동대표(40), 크리스티안 린드너 자민당 대표(42)와의 간극을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대책과 복지 강화를 외치는 녹색당과 시장주의 및 재정 긴축을 요구하는 자민당과의 충돌이 빈번할 가능성이 벌써부터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베어보크 대표가 새 내각에서 숄츠 못지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병기 영남대 교수(정치외교)는 “녹색당은 사민당, 자민당과 달리 메르켈이 네 번 집권하는 동안 한 번도 연정에 참여하지 못한 당”이라며 “그런 녹색당이 새 연정 내 제2당이 됐고 당 대표 또한 외교장관이라는 주요 직책을 맡았다”며 인권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 녹색당이 독일의 대외 정책에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지 주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현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세계지역연구센터 유럽팀 전문연구원 또한 “베어보크는 러시아에 비판적이며 독일과 러시아의 송유·가스관 합작사업인 노르트스트림에도 굉장히 부정적인 인물”이라며 독일의 대외정책이 상당 부분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올라프 숄츠 신임 독일 총리 후보자(63)1958년 니더작센주 오스나브뤼크 출생
1975년 사회민주당 입당, 산하 청년조직 ‘유조스’에서 활동
1978년 함부르크대 법학과 입학
1985년 변호사 시험 합격, 노동법 전문 변호사로 활동
1998년 연방의회 입성, 사민당 동료 브리타 에른스트(60)와 결혼
2001년 함부르크주 내무장관
2007∼2009년 노동사회부 장관
2011∼2018년 함부르크 시장
2018년 3월 부총리 겸 재무장관
2021년 8월 사민당 총리 후보 선출
2021년 9월 26일 사민당 총선 승리
2021년 11월 24일 녹색당·자유민주당과 연정 구성
2021년 12월 6∼9일 중 연정 출범 및 총리 취임 예정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