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타 겸업’ 효율성 낮다는 기존 상식 깨 日 사회에 지레 포기하지 않는 용기 줘
도쿄=박형준 특파원
일본의 올해 유행어 대상으로 ‘쇼타임’과 ‘리얼 이도류(二刀流)’가 뽑혔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쉽게 주인공이 떠오를 것이다.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투타 겸업 선수로 뛰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LA 에인절스)다. 미국 방송 아나운서들은 오타니가 등장하면 그의 이름에 있는 쇼(翔)를 넣어 “이츠 쇼 타임”이라고 말한다. 이도류는 양손에 칼을 들고 공격과 수비를 함께하는 기술을 뜻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을 모아 놓은 MLB에서 올해 만장일치로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된 오타니에게 일본 열도는 올 한 해 열광했다. 7, 8월 도쿄 올림픽 기간 아침 정보 TV 프로그램에서 오타니에 대한 속보가 줄면 시청자 항의가 빗발칠 정도였다. TV에 출연한 한 인사는 “험담하는 사람이 없는 대상은 (도쿄 우에노동물원에 있는) 판다와 오타니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본에선 여러 스포츠 중 특히 야구 인기가 높은 것 같다. 4일 자전거로 도쿄 다마강 주변 약 10km를 달리면서 보니 6개 잔디구장 중 4곳에서 야구를, 2곳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모두 초중고교생이었다. 도쿄 도심의 학교 운동장에서도 주말에 야구를 즐기는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다.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는 엘리트 선수 중심으로 야구를 이어가는 한국 학생들과 다른 모습이다.
다시 오타니 선수 이야기다. 스포츠과학 측면에서 볼 때 투타 겸업은 효율성이 떨어진다. 사용하는 근육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에 집중하는 게 낫다. 반복 연습을 해 몸이 기술을 기억하도록 만드는 게 이길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포지션을 정해 집중적으로 훈련시킬 정도로 야구는 점차 전문화되고 있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오타니는 일반적인 상식에 도전했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일본 사회에 ‘꿈’을 심어준 것이라 생각한다. 제2의 오타니가 될 인재가 지레 겁을 먹고 투타 중 하나를 고민하는 중학생, 세계적 디자이너가 될 이가 수학 성적이 안 나와 인생 전체를 포기하려는 고교생, 노벨 화학상을 탈 인물이 거듭된 연구 실패로 연구를 접을지 망설이는 과학자…. 그런 이들에게 꿈을 꺾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줬다. 다만 한 가지 주의점이 있다. 오타니는 장타를 위해 몸에 근육을 붙여 체중을 늘리면서도 투수로서 중요한 어깨뼈 주변 근육의 탄력성을 잃지 않았다. 그만큼 이도류에 대한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남들 두 배의 노력을 했다. 계속 꿈만 꾸고 있었다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꿀 수 없었을 것이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