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번호로 발신번호 속여 현금 요구…신종 ‘맞춤형 보이스피싱’ 기승 휴대전화에 악성코드 심은 뒤…주소록서 전화번호 알아내 ‘변작’ 경찰 “가족-지인번호 ‘변작’ 의심 땐…우선 전화 끊은 후 경찰에 신고하길”
“아내가 납치됐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도와주세요.”
1일 서울 송파경찰서에 A 씨의 다급한 신고가 접수됐다. 부인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받았는데 “납치됐다”며 우는 여성의 목소리와 함께 정체불명의 남성이 “5000만 원을 송금해야 아내를 풀어주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곧바로 A 씨 부인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에 나섰다. 그런데 A 씨의 부인은 집 근처에 있었고 납치를 당한 상태도 아니었다. 조사 결과 A 씨 휴대전화에 표시된 부인의 전화번호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A 씨를 범행 대상으로 삼아 조작한 것이었다.
일선 경찰서에는 A 씨와 비슷한 신고 사례가 최근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지난달 서울의 한 경찰서에 “큰딸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와 ‘딸을 납치했다’며 돈을 요구했다. 두려운 나머지 1200만 원을 인출해 건넸다”는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딸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와 의심 없이 전화를 받았는데 중년 남성이 “당신의 딸이 사채로 돈을 빌렸는데 갚지 않아 지하실에 감금했다. 당장 강남역 1번 출구로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경찰이 확인한 결과 이 전화가 걸려온 실제 번호는 국제전화식별번호(001번) 뒤에 딸의 전화번호를 붙인 형태였다. 경찰은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이 걸어온 전화인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관계자는 “발신번호 변작 신고 중 가족이나 지인의 번호를 특정해 변작하는 사례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며 “경찰과 정확한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가족의 번호로 특정해 변작하는 사례가 있어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해외 보이스피싱 조직은 미리 범행 대상의 개인정보를 해킹하거나 휴대전화에 악성코드를 심은 뒤 주소록에 접근하는 방식으로 가족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다양한 수법을 활용해 발신 번호를 변작해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해외에서 전화를 걸 때 거치는 해외 통신사에서부터 번호를 조작하거나 원격 제어 앱을 이용해 변작하는 경우도 있다.
김윤이 기자 yun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