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
그의 이름은 이택수.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열심히 했고 졸업 후 K은행에 들어가서도 꾸준히 토익 시험을 봤던 근면성실의 아이콘이다. 그의 집 책장에는 S대 졸업 앨범이 2권 꽂혀 있는데, 내 보기에 그것은 최고의 인테리어 소품. 속물인 나는 그 집에 갈 때마다 “나 한 권 주면 안 돼?” 하고 묻는다. 신혼을 서촌 빌라에서 시작한 그는 2017년 홍은동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1980년대 초에 지어진 구옥. 빨간 벽돌로 단단하게 마감한 2층집으로 배드민턴장만 한 마당도 딸려 있다. 나는 이 집에 가면 마음이 그렇게 편하고 넉넉할 수 없다. 마당에는 볕이 떨어지고 이전에 살았던 분이 디자인과 교수라 그런지 나무문과 계단을 포함해 구석구석이 아름답다. 택수 씨가 고기라도 구워 준다고 초대하면 야호, 소리가 절로 나온다.
택수 씨는 이 집으로 이사하면서 엄청 바쁘다. 황금 같은 주말이 오롯이 ‘노동’으로 꽉 차는 때도 많다. 옥상 방수공사도 직접 하고, 오래돼 깨진 돌계단 파편도 손수 손본다. 조경에도 진심이어서 라일락, 포도나무, 넝쿨장미, 수국, 황매화를 이곳저곳에 심어보며 어떤 환경에서 잘 크는지 살뜰히 들여다본다. 마당 한편 텃밭에는 무와 배추를 심어 김장을 하고 풍년일 때는 1000개도 열린다는 감도 직접 딴다. 지난주 갔을 때는 감나무 가지치기를 하느라 바빴다. “아이고 되다”며 일을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온 택수 씨가 “한 번 드셔 보실래요?” 하며 말캉하게 말린 감을 건넸다. 보드라운 속살이 풍성한 과즙과 함께 후루룩. 음∼ 하는 감탄사가 절로 새어 나올 만큼 맛있었다. “땡감을 오렌지 색깔이 될 때까지 놔뒀다가 말랑말랑해졌을 때 따 껍질을 깎아 매달아 놓으면 이렇게 맛있어지더라고요. TV 앞에 앉아 헝겊으로 감 닦으며 드라마 보고 있으면 좋아요. 이번에는 ‘동백꽃 필 무렵’을 다시 봤어요. 하하.”
나는 그의 이런 삶이 마디마디 부러워 죽겠는데 생각이 다른 이도 있는 듯. 집에 놀러 온 사람 중에는 이렇게 말한 사람도 있었단다. “택수 씨, 똑똑한 줄 알았는데….” 가격이 쭉쭉 오르는 아파트를 버리고 단독주택에 살면서 이 고생 저 고생 하며 사는 그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그가 참 똑똑하게, 잘 사는 것 같다. 많은 시간, 계절 속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일상의 기쁨도, 감을 맛있게 먹는 법도, 넝쿨 장미를 잘 키우는 방법도 알고 있고. 이리저리 계속 마음을 쓰고 몸을 움직이는 일. 그 맛을 아는 것이 곧 행복의 비결 같기도 하다.
정성갑 한 점 갤러리 클립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