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
침대에서 책을 읽다가, 머리 위에서 아주 작은 무언가 날아다니는 것을 흘깃 보았다. 아마 먼지 덩이겠지. 책으로 눈을 돌렸다. 1분 뒤 그게 다시 돌아왔다. 먼지가 또 있나? 그럴 리가 없다, 어제 청소했는데. 곧 의문이 걷혔다. 지구에서 가장 불쾌한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앵앵. 바로 모깃소리다. 한국 모깃소리. 아니, 겨울인데 이럴 수가 있나! 화가 나서 손을 뻗어 전기 모기채를 집어 들었다. 내 생각에 바퀴, 인쇄술과 더불어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다. 몇 년 전부터 침대 옆 탁자에 갖춰두고 있는데, 눈에 보이지 않거나 다른 방에 놓고 오면 왠지 불안해진다. 뱃속을 간지럽히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기 위해서 방마다 하나씩 놓아둘까도 생각하고 있다. 세상에서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훌륭한 발명품을 만든 사람이다. 검색해 봤는데, 1988년 쉬훙즈라는 사람이 최초로 전기 모기채 특허를 대만에서 냈다고 한다. 1996년에는 차오이시라는 대만인이 미국에서 특허를 출원했다. 인터넷에는 두 발명가에 대한 정보를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사람들이 그의 업적에 관해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내 생각엔 레오나르도 다빈치, 세종대왕만큼 위대한 인물인데 말이다.
한손에 이 ‘전기의자’를 쥐고 모기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채식주의자인 내 친구 한 명은 모기를 죽이는 것이 폭력적이라고 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친구의 신념은 존중한다. 그러나 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존재인(혹은, 신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걸 증명하는 존재일 수도) 벌레조차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름이 되면 내 친구는 매일 밤잠을 설치고, 팔과 얼굴엔 모기에 물린 자국이 수두룩하다. 여름뿐 아니라 봄, 가을, 겨울에도 그렇다. 왜냐하면, 한국 모기는 겨울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아무래도 이 나라의 모기는 다른 모기들보다 똑똑한 것이 분명하다. 나는 콜롬비아에서도 살았고 미국과 스페인에서도 살았는데 모기가 여기처럼 기민하게 숨어 있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한국에서 생겨난 종이 있다. ‘한국숲모기(Aedes Koreicus)’라는 종이다. 독일의 한 연구에 따르면 이 모기가 유럽에 상륙한 지 이미 한참 됐다. 2008년 벨기에에서 처음 발견됐고 2011년 이탈리아, 2013년 스위스와 슬로베니아, 2015년 독일에서 발견됐다. 2016년에는 헝가리, 2018년에는 오스트리아에서까지 나타났다. 거의 K팝 수준이다. 한국숲모기와 유사한 종은 ‘일본숲모기’다. 일본숲모기가 유럽에 먼저 상륙했고 한국이 ‘명성’을 앗아갔다는 주장이 일부 있다는 사실도 K팝과 유사하다. 무슨 소설가 박민규의 단편에 등장할 법한 얘긴가 싶겠지만,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모두 사실이다.
슬며시 손을 뻗어 내 무기를 꼭 쥔 다음, 부디 한 번의 습격으로 모기를 잡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모기가 모기채에 닿는 순간 들리는 찌지직거리는 소리, 이토록 달콤할 수 없다. 흡족한 기분으로 침대로 돌아오며, 질병을 옮기는 이 모기 놈을 내가 잡았으니 어디선가 일어날 혹시 모를 감염을 내가 예방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부디, 나의 채식주의자 친구가 얼마 전에 봤던 ‘K-Music Matters(한국 음악은 소중하다)’ 지식재산권 콘퍼런스에 영감을 받아 새로운 운동을 만들어내지 않기 바란다. 여기서 K뮤직은 물론 K팝을 의미한다. 혹여 인도네시아의 한 시장에서 부산 출신 인디 록밴드 세이수미 티셔츠가 팔리고 있다고 한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 친구가 길에 나와 ‘K-Mosquito Matters(한국 모기는 소중하다)’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런 날이 오면 나는 작은 전쟁들 앞에서 싸움을 포기하고 장렬히 전사할 것이다.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