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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엘리제궁 권좌 男이 독차지… 女삼총사, 유리천장 깨뜨리나[글로벌 포커스]

입력 | 2021-12-11 03:00:00

내년 4월 프랑스 대선… 여성후보 3명 출사표
화려한 외모-금수저 페크레스… 변호사 출신 르펜 국민연합 대표
佛 최초 여성파리시장 이달고… 마크롱, 대선 여론조사 첫 패배




내년 4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프랑스에서 여성 후보들의 바람이 거세다. 주요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44)을 꺾기 위해 우파 공화당의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54), 극우 국민연합의 마린 르펜 대표(53), 중도좌파 사회당 안 이달고 파리 시장(62) 등이 추격하는 모양새다. 특히 페크레스 주지사와 르펜 대표는 ‘프랑스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리는 극우 논객 에리크 제무르(63)와 함께 주요 지지 기반인 보수 유권자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한 혈투를 벌이고 있다.

대선에 여성 후보가 셋이나 등장한 것도 이례적인 데다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결선 투표를 치르는 프랑스 대선의 특성상 일각에서는 조심스레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다. 7일(현지 시간) 여론조사 회사 엘라브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다자 후보가 대결하는 1차 투표에서 23%의 지지율로 페크레스 주지사(20%)를 눌렀다. 그러나 결선 투표에서 둘만 붙었을 때는 페크레스가 52%로 마크롱(48%)을 이겼다. AFP통신은 “마크롱 대통령이 대선 여론조사에서 패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여성 후보의 약진에 의미를 부여했다.

○ ‘마리안’의 나라지만 여성 지도자 없는 佛

프랑스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로고에는 1789년 대혁명의 상징인 ‘마리안’의 얼굴이 들어 있다. 약 3만6000개의 전국 관공서 입구에도 마리안 동상이 세워져 있다. 15세기 백년전쟁 당시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 현대 페미니즘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사상가 시몬 드 보부아르 등도 역사를 수놓은 여성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정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여성의 입지가 낮은 편이었다. 16년간 권좌를 지킨 후 8일 퇴임한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67), 11년간 집권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테리사 메이 전 영국 총리(2016∼2019년 집권) 등 이웃 나라에서는 속속 여성 지도자가 등장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여성 최고 권력자가 나온 적이 없다.

일간 르파리지앵에 따르면 대통령 직선제가 재도입된 1965년 이후 대선에 도전한 여성은 총 12명. 첫 후보는 1974년 대선에서 노동자 권익을 주창한 ‘노동자투쟁’ 소속 좌파 정치인 아를레트 라기예르(81)다. 당시 2.3%의 지지로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12명 중 결선 투표에 진출한 여성은 단 2명이다.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 후보로 나선 세골렌 루아얄(68)과 2017년 대선의 르펜 대표다. 루아얄은 행정법원 판사 출신으로 사회당 거두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1982년 정계에 입문했다. 서부 되세브르 주지사 등을 거쳐 대선에 출마했다. 그는 당시 결선 투표에서 53.1%를 얻은 공화당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66)에게 약 6%포인트 차이로 패했다. 르펜은 5년 전 결선 투표에서 33.9%를 얻었다. 마크롱 대통령(66.1%)과 상당한 차이가 났다.

크리스텔 라지에 아비뇽대 교수는 온라인 정치매체 슬레이트에 “내각제인 영국, 독일 등과 달리 강력한 대통령제인 프랑스에서는 국가 정상이 능력과 권위를 모두 갖춘 남성적인 자리로 인식돼 왔다”며 이것이 여성은 대통령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일종의 ‘유리 천장’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루아얄과 르펜은 남성의 후광 효과를 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루아얄은 대선 출마 당시 사회당 대표였던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67)과 사실혼 상태였다. 4명의 자녀를 둔 올랑드로부터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지만 대선 후 결별했다. 올랑드는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해 5년간 집권했다. 르펜의 부친 역시 국민연합의 전신 ‘국민전선’을 창당한 극우 정치인 장마리 르펜(93)이다. 각각 목사와 잡화점 운영자의 딸이었던 메르켈과 대처가 부친이나 남편의 후광 효과 없이 독자적 정치 경력을 개척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여성 총리 또한 단 1명에 불과하다. 사회당 소속의 에디트 크레송(87)은 1991년 5월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이듬해 4월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1년도 못 돼 사퇴했다.

○ 마크롱 추격하는 페크레스와 르펜

이런 과거와 달리 내년 대선에서는 여성 대통령이 나올 수 있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페크레스 주지사와 르펜 대표가 마크롱 대통령을 협공하는 분위기가 뚜렷하다.

여론조사 회사 IFOP가 4∼6일 실시한 조사에서 두 후보는 각각 17%의 지지율을 얻어 공동 2위를 기록했다. 1위 마크롱(25%)에 뒤지나 결선 투표에서 후보 간 합종연횡이 일어난다는 점을 감안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르몽드는 “재선을 노리는 마크롱의 난관은 주요 경쟁자가 여성이라는 점”이라며 “유권자들이 그간 드물었던 여성 후보의 부상에 참신함을 느낀다는 점을 마크롱 측 또한 우려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첫 여성 대통령에 대한 사회 전반의 기대도 높다. 지난해 해리스 인터랙티브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향후 10년 안에 여성 대통령이 나오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여성 대통령의 집권이 현실화될 것”이란 답도 57%였다.

특히 20, 30대 젊은 여성의 기대가 상당하다. 파리 15구 주민인 20대 대학생 엘레나 씨는 “프랑스에도 이제 여성 정상이 나올 때가 됐다. 친구들과 ‘여성 대선 후보에게 투표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 했다.

특히 샤를 드골, 자크 시라크 등 우파 거두 정치인을 배출한 공화당의 첫 여성 대선 후보인 페크레스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금발, 화려한 외모의 금수저 정치인인 그는 1967년 파리 근교 부촌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유명 경제학 교수 도미니크 루(78), 외조부는 시라크 대통령의 딸 로랑스의 거식증을 치료한 유명 정신건강과학과 의사 루이 베르타냐다. 명문 그랑제콜 국립행정학교(ENA)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ENA는 마크롱 대통령을 포함해 대통령만 4명을 배출한 프랑스 엘리트의 산실이다. 이후 유럽 최고 경영대학원 중 하나인 HEC파리에서 경영학 석사까지 땄다.

1998년 시라크 대통령의 보좌관으로 정계에 입문했고 사르코지 행정부에서 교육장관, 예산장관, 정부대변인 등을 맡으며 출세 가도를 달렸다. 2015년부터 파리를 포함한 수도권 일드프랑스의 주지사로 재직하고 있다. 1994년 결혼한 투자은행가 겸 기업인 제롬(54)과의 사이에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유권자를 만나면 악수 대신 포옹을 하며 친화력을 과시한다.

르펜 역시 1968년 뇌이쉬르센에서 태어났다. 파리2대학에서 법학 석사를 취득하고 변호사로 활동했다. 2000년 정계에 입문했고 국민전선 부대표를 거쳐 2011년 대표직에 올랐다. 2015년 과도한 극우 성향인 부친을 당에서 쫓아냈고 3년 후 당명을 국민연합으로 변경했다. 두 번 결혼했고 모두 이혼했다. 첫 남편과의 사이에 세 자녀가 있다.

이달고 시장은 자수성가한 정치인이다. 1959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서 태어났고 2세 때 부모와 프랑스로 이주했다. 가족은 남부 리옹의 작은 공공 임대주택에서 살았고 프랑스어를 못하는 그의 부모는 청소 등 육체노동직을 전전했다. 이달고 또한 14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리옹3대학에서 사회법을 전공한 후 사회당에 입당했다. 2001년부터 13년간 파리 시장을 지낸 베르트랑 들라노에 전 시장(71)을 보좌하며 파리 부시장을 지냈다. 2014년 들라노에의 뒤를 이어 최초의 여성 파리시장이 됐다. 사회당 동료인 남편과의 사이에 아들 하나를, 결혼 전 연인으로부터 두 자녀를 두고 있다.

○ 이민자 갈등이 쟁점…우파 후보 간 경쟁 치열


마크롱 대통령 측은 여성 후보의 약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가브리엘 아탈 정부 대변인은 최근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페크레스 후보는 명확한 노선이 없다. 과거 장관일 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했으면서 마크롱 정권의 노동시장 개혁, 세금 인하, 일자리 창출 등을 비난만 한다”고 주장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빠르면 이달 말 재선 도전을 공식화하고 대규모 유세에 나서기로 했다.

여성 후보 간 견제도 치열하다. 르펜은 4일 페크레스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 확정되자 즉각 “마크롱을 닮았다”며 ‘여성 마크롱’이라고 비판했다. 퇴직연령 상향, 예산 삭감, 공공분야 일자리 감축 등 페크레스의 공약이 노동유연화를 골자로 한 마크롱 정권의 친기업 정책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자 페크레스 또한 “내년 4월에는 르펜이 부각되지 않을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르펜과 제무르를 싸잡아 비판하며 ‘두 사람은 인종차별적 포퓰리스트’라고 했다.

알제리 태생의 유대계 부모를 둔 제무르는 포퓰리스트 비판을 피하기 위해 프랑스인의 ‘정체성’을 내세운다. 자신이 이슬람 혐오 발언을 하고 ‘집권 시 이민 제로(0)’ 같은 강도 높은 반난민 정책을 펴는 것은 이민자의 종교와 피부색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프랑스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탓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프랑스인이 되려면 몽테뉴, 발자크, 파스칼 등 프랑스 위인의 사상을 알고 그들을 조상으로 여겨야 한다”며 프랑스에서 살면서 히잡 등 이슬람 전통 복장을 고수하는 사람은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취지의 주장을 편다.

오창룡 고려대 국제대학원 노르딕-베네룩스센터 교수 또한 이번 대선의 주요 쟁점을 이슬람 극단주의 위협과 이민자 갈등으로 꼽았다. 지난해 역사교사 참수 사건, 2015년 파리 연쇄 테러 등 무슬림 극단주의자가 저지른 참혹한 테러의 기억이 국민 뇌리에 생생한 데다 마크롱, 페크레스, 르펜, 제무르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반난민, 반이슬람 정책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 교수는 “중도우파는 원래 극우와 달리 인종차별적 정책과 강령을 내세우지 않는데 사르코지 전 대통령 시절부터 중도우파 또한 극우 정당 못지않게 이민자 혐오 정서를 동원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마크롱 대통령 또한 최근 극단주의 이슬람 단체에 대한 대대적인 해산 작업에 나섰다. 과거 식민지였던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3국 국민에 대한 비자 발급도 대폭 축소했다. 이 역시 무슬림과 이민자에 부정적인 사회 전반의 기류를 의식한 행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파 후보 간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면서 내년 대선의 승자를 점치는 일 또한 어려워지고 있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외교)는 “결선 투표제의 특징은 유권자들이 1차 투표 때는 진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후보를 찍는다는 것”이라며 “그래서 누가 1, 2등을 할지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5, 6명이 비슷한 지지율로 겨루면 불과 1∼2%포인트의 격차로 1, 2위 후보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후보가 결선 투표에 진출하더라도 극단의 이미지가 있는 르펜이나 제무르보다는 중도인 마크롱과 페크레스가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내년 대선의 승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국제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8일 올라프 숄츠 새 독일 총리가 집권했고 미국에서도 내년 11월 중간선거가 실시된다. 미중 갈등과 미-러 갈등 또한 날로 첨예해지고 있다. 조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프랑스가 어떤 대외 노선을 택하느냐에 따라 유럽이 미국 중심으로 뭉치느냐, 분열하느냐가 결정된다”며 프랑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진단했다.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