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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스니커테크’ 열풍… 22만원짜리 신발 1100만원에 거래

입력 | 2021-12-11 03:00:00

[위클리 리포트]‘한정판 중고 신발’ 부르는 게 값… 스니커즈 리셀 시장 급성장
젊은층 패션 아이템 수집 욕구
나이키 에어조던 시리즈 등 열광… 희소가치 클수록 고가에 거래돼
업체, 한정판 신제품 추첨제로 팔고, 중고거래는 리셀 플랫폼서 이뤄져




《하룻밤 새 가격이 수백만 원씩 치솟는 중고 신발에 열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경험소비와 희소성을 중시하는 MZ세대 사이에선 일명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로 불리며 인기다. 급성장 중인 스니커테크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중고 신발이 수백만원 ‘스니커테크’
‘21세기 카를 라거펠트’라 불리던 세계적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가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사망하자 국내 스니커즈 리셀 시장이 요동쳤다. 아블로는 루이비통 최초 흑인 수석 디자이너이자 오프화이트 창업자로 명품과 스트리트 패션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평가를 받아온 디자이너다. 사망 소식이 들려온 직후 그가 제작한 스니커즈 중고가는 그야말로 폭등했다. 최신작 ‘조던1×오프화이트 레트로하이 시카고 더텐’ 제품은 사망 전 국내 리셀 플랫폼에서 670만 원에 거래됐으나 지난달 29일 1100만 원에 팔렸다. 발매가 약 22만 원의 50배 수준이다.

최근 스니커즈 리셀 시장에서는 뜻밖의 사고로 값이 수십 배 치솟는 현상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후속 제품 출시 가능성이 끊기면서 시중에 남아있는 물건의 희소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지난달 5일 미국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이 공연하던 중 관객 10명이 사망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이키가 스콧과의 협업 스니커즈 출시일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힌 지 2주도 채 되지 않아 기존 협업 제품의 리셀 거래금액은 3개월간 최고가를 경신했다. 경험소비와 희소성에 열광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일명 ‘스니커테크’(스니커즈+재테크)가 큰 인기를 끌면서 나타나게 된 현상이다.

○ 소장욕·과시소비 꽂힌 MZ세대가 키운 스니커테크

희소한 중고 신발을 고가에 사고팔며 이윤을 남기는 ‘스니커테크’는 국내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급성장을 바탕으로 나타난 새로운 현상이다. 한국의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원조’ 격인 미국과 비교하면 역사가 짧은 편이다. 미국의 경우 1980년대 나이키가 프로농구 선수 마이클 조던과 손잡고 ‘에어조던’ 시리즈를 출시하며 리셀 시장이 형성됐다. 조던은 출시되는 족족 품귀 현상을 빚었고 중고 가격은 덩달아 올라갔다.

국내에서는 2000년대 중반경 ‘나이키매니아’ ‘디젤매니아’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신발 마니아들을 중심으로 중고품이 거래된 게 시작점이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시장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영세한 수준이었다. 스니커즈 리셀 시장이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성장한 건 2019년 전후부터다. 2018년 ‘아웃오브스탁’ ‘프로그’, 2019년 ‘엑스엑스블루’ 등 중소 리셀 플랫폼이 생겨나며 거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역사는 짧지만 규모는 단기간에 커졌다. 업계는 지난해 5000억 원이던 시장 규모가 올해 2배로 커져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

마니아에 국한됐던 스니커즈 중고 거래를 성장시킨 건 소장에 열광하는 MZ세대 소비자였다. 이들은 발매가보다 높은 값을 지불하고서라도 한정판 제품을 갖고 싶어 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공유하기 좋아하는 젊은 소비자들에게 스니커즈 구매는 일종의 경험 소비였기 때문이다. 아블로가 생전에 제작했던 스니커즈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유작’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경험소비로 형성된 시장은 대형 리셀 플랫폼의 등장으로 본격화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정판 스니커즈는 다양하게 변주되는 디자인과 역동적 이미지 덕에 남성 소비자들 위주로 소장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며 “특히 과시소비의 기본 요소인 ‘비싼 가격’과 ‘돈이 있어도 못 산다’는 요소를 모두 담고 있어 젊은층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정욕구를 충족하기도 좋은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 제조사는 ‘마케팅 효과’, 투자자는 ‘단기 차익’

단시일 내 급성장을 이룬 스니커테크 시장은 주식시장보다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 시장이 커지면서 스니커즈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투자자들까지 몰려왔기 때문이다. 수많은 패션 아이템 중에서도 특히 스니커즈가 재테크 수단으로 급부상한 건 가격대, 구매 경로 등에서 진입장벽이 낮아서다. 발매가 10만∼20만 원대 스니커즈를 사서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까지도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다. 부동산, 주식 등과 달리 젊은층도 소액으로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수단인 셈이다.

제조사들의 한정판 마케팅도 시장을 키운 한 요인이다. 한정판 스니커즈 대부분은 일명 ‘뽑기’라 불리는 래플(raffle·추첨제) 방식으로 시장에 풀린다. 스니커즈를 제작하는 브랜드들은 최근 한정판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은 한정판 스니커즈를 제작해 래플로 판매하는 방식을 즐겨 쓴다. 대부분 완판돼 수익을 내기도 좋을 뿐 아니라 MZ세대의 경험소비를 자극해 브랜드에 대한 충성심도 높일 수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래플에 참여하는 고객 수와 관여도가 점차 높아지는 만큼 제조사들은 이 같은 마케팅을 관두긴 어려울 것”이라며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제조사와 소액으로 단기 차익을 누리려는 MZ 투자자들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스니커테크가 더 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나이키의 경우 달마다 발매되는 한정판 스니커즈만 2, 3종이며 각종 온·오프라인 채널에서 진행하는 래플 횟수로 따지면 평균 10회가 넘는다.

일단 래플에 당첨되면 단번에 시세 차익이 보장된다. 간단한 회원가입만 거치면 리셀 플랫폼에서 상품을 되팔 수 있다. 중고 스니커즈는 객관적인 가치평가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르는 게 값이고 지불하는 게 시세다. 판매자와 투자자가 모두 발매가에 아랑곳없는 가격으로 매매함으로써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수요자와 공급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리셀 제품에 관련한 정보를 먼저 획득한 매수자, 매도자가 높은 가격을 선제시하면 그 가격대에 맞춰 시세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며 “객관적인 가치 평가가 어려운 미술품 경매 시장에서 큰손 한 명이 나서면 가격이 폭등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말했다. 홍기훈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돈 놓고 돈 먹는’ 리셀 시장에선 투자자들이 자기 임계치만 넘으면 바로 팔아버리는 단타가 많다”며 “단타 거래가 늘면 판매가 주목적인 투자자들은 자연스럽게 매매를 더 늘리게 되고, 커진 시장을 보고 또 다른 투자자들이 대거 뛰어들면서 전체 시장이 과열돼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 네이버·무신사 등도 가담한 스니커테크 시장

국내 스니커즈 리셀 시장의 호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리서치 전문기업 코웬엔코에 따르면 전 세계 스니커즈 리셀 시장은 매년 약 20%씩 성장해 2030년 약 35조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시장은 미국, 중국 등에 이어 전 세계 3, 4위 수준으로 평가된다. 리셀 플랫폼 ‘크림’의 관계자는 “취향의 범주가 음악, 미술품을 넘어 패션으로까지 확장하면서 희귀품 소장이 자기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매개체로 떠올랐다”며 “한정판 스니커즈 보유 역시 취향의 한 반열에 올라선 만큼 시장의 잠재력과 확장성이 보장된 셈”이라고 말했다.

국내 시장을 사실상 양분 중인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 크림과 ‘솔드아웃’은 지난해 네이버 자회사 스노우와 무신사가 각각 선보인 업체들이다. 크림은 올해 8월 가입자 100만 명 이상을 보유한 국내 최대 스니커즈 커뮤니티 나이키매니아를 80억 원에 인수하는 등 공격적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거래금액 기준 리셀 플랫폼 1위로 꼽히는 크림의 올해 1∼11월 거래 규모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5.3배 뛴 것으로 나타났다. 9월에는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가 우리나라에 공식 상륙하기도 했다. 국내 소비자가 지난 1년간 스탁엑스를 통해 상품을 직구한 건수가 전년 대비 134% 증가하자 한국 시장의 잠재력에 주목한 것이다. 아시아에서는 호주, 일본, 홍콩에 뒤이은 네 번째 진출이다.

유통 대기업들도 스니커즈 리셀에 뛰어들며 시장 규모를 키우는 추세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7월 스니커즈 리셀 플랫폼으로 국내 최초인 아웃오브스탁과 업무 협약을 맺고 백화점 점포에 오프라인 리셀 매장을 열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개점과 동시에 오프라인 리셀 매장 ‘브그즈트랩’ 1호점을 유치했다. 리셀 업계 관계자는 “패션 아이템을 수집하는 이들의 모수가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샤테크’, ‘롤테크’ 등 희소성 있는 한정판 상품에 대한 국내 관심도가 높아졌다”며 “해외와 비교해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만큼 당분간은 시장 성장세가 이어질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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