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대입 혼란]‘수능 생명과학Ⅱ 소송’ 재판 현장
수능 공란 성적표 10일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에게 배부된 성적통지표. 내용 오류 논란으로 법원이 20번 문제의 정답 효력을 정지시킨 생명과학Ⅱ 과목의 점수 칸(원 안)이 비어 있다. 뉴스1
“생명과학연구원이라는 꿈이 있었습니다. 서울대는 1점으로도 합격이 갈립니다. 판사님, 제가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세요.”
10일 오후 서울행정법원 B221호 법정.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영역 생명과학Ⅱ 과목의 20번 문제에 오류가 있다며 소송을 제기한 응시자 김모 군은 법정에서 이렇게 밝혔다.
김 군은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의 출제 오류를 마주했고 당연히 오류가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결과가 나오지 않아 고민하면서 풀고 또 풀었고 결국 10분 넘게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찝찝함에 다른 문제에 집중하지 못했다. 20번 문제는 생명과학Ⅱ 시험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 “전체 시험에 영향” vs “전문가 자문 거쳐”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 심리로 열린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자 92명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을 상대로 제기한 정답 결정 처분 취소 소송의 첫 재판에는 응시자 20여 명과 학부모,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의 입시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방청 인원이 제한돼 재판 시작 전 학생들과 대학 관계자들이 “법정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법원 측에 요구했지만 제지당했다. 학생과 학부모 20∼30명은 법정 밖에서 대기했다.
피고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측은 법정에서 “대학교수와 과학고 교사 등에게 자문을 한 결과 애초 정답 결정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수렴됐다”며 “모든 답을 정답 처리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수능에 응시한 원고들은 ‘하디-바인베르크 평형’을 다룬 생명과학Ⅱ 20번 문제가 지문에 따라 계산하면 한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는 오류가 있다고 맞섰다. 응시자 측은 “특정 조건에 의해 문제를 아예 풀 수 없게 된다”며 “전원 정답 처리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재판 도중 직접 원고 응시자에게 “이런 문제를 가장 모범적으로 푸는 방법을 설명해 달라”고 요청해 응시자가 직접 문제 풀이 과정의 오류를 설명하기도 했다. 재판장은 “특정 조건을 고려하면 수험생 입장에서는 (정답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잖아요”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응시자 측은 재판 직후 기자회견을 통해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서울대 의대 교수의 입장문도 (재판부에) 제출했다”며 “‘빨리 풀고 넘어가지’라는 취지의 평가원 입장으로 인해 학생들도 분개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재판부가 조기 선고 거부하자 대학 측 분개
재판부는 17일 오후 1시 30분에 선고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가급적 학사 일정에 지장이 없도록 최대한 빠르게 심리하려 하지만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그럼에도 사정이 있다면 의견을 주면 선고 기일을 당길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방청석에 있던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 측은 재판장에게 “14일 오전까지 재판 결과가 나온다면 16, 17일까지 정리해서 발표할 수는 있지만 지연되면 정시 모집 등 대입 전형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선고를 서둘러달라고 요구했다. 재판부가 선고 일정을 바꾸지 않자 일부 대학 관계자는 법정을 나가면서 거친 말을 하는 등 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앞서 재판부는 수능 성적 통지를 하루 앞둔 9일 생명과학Ⅱ 20번 문제의 정답 효력을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일시 정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0일 생명과학Ⅱ 점수가 공란인 성적표가 수험생들에게 전달됐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