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CC 시절 주니어 골프 산실로 유명 묵묵히 한국 골프 국제 경쟁력 강화에 기여
LPGA 투어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는 강형모 회장과 박세리. 동아일보 DB
한국 아마추어 골프의 대부로 불리던 강형모 유성CC 회장(65)이 최근 대한골프협회 상근부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11일 대한골프협회에 따르면 강 회장이 협회 부회장에서 사의를 밝혀 후속 인선 작업에 들어갔다. 앞으로 협회가 상근 부회장 체제가 아닌 상근 전무 제도를 도입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건강과 사업 등 일신상의 문제를 사직 이유로 들었지만 골프계에서는 다른 사연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초 신임 집행부 구성 후 대한골프협회는 이런 저런 잡음이 불거졌다. 협회 존립 목적과 무관해 보이는 대외 수익성 사업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거나 국가대표선발전 대회 장소조차 잡기 어려워 지방을 전전할 정도로 협회 운영에 본말이 뒤집혔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대한골프협회 이사는 “협회를 특정 인사가 쥐고 흔들려 하면서 편 가르기 양상 속에 내홍 조짐까지 보인다. 정작 해야할 일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박세리 발굴로 한국 골프 이정표 수립
대한골프협회 상근 부회장에서 물러난 강형모 유성CC 회장. 대한골프협회 제공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골프장을 찾던 어린 시절. 막연히 세계 정상을 꿈꾸며 골프채를 잡던 나에게 유성컨트리클럽은 언제나 포근한 어머니의 품 같았습니다.”
대전 유성CC 퍼팅연습장 부근에는 이런 글이 새겨진 감사비가 있다. 한국 골프의 전설 박세리가 주니어 시절 자신의 꿈을 키워갈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이 골프장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며 세운 것이다.
박세리가 한국 골프에 미친 영향력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터. 한국 골프 역사는 ‘세리 전후’로 나뉜다는 말이 과언이 아니라고 보면 자연스럽게 한국 아마추어 골프의 메카로 불리는 유성CC의 존재감을 실감할 수 있다.
20년 넘게 연고지 대전 출신의 선수와 국가대표, 상비군에게 골프장을 무료로 개방해 실전 경험을 쌓도록 배려하고 있다. 박세리, 장정, 전미정, 김주연, 이미나, 홍진주, 허미정 등은 대표적인 ‘유성 장학생’으로 불린다.
은광여고 시절인 2013년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에서 우승한 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부회장과 포즈를 취한 고진영. 동아일보 DB
2000년부터는 국내 최고 권위의 한국여자아마추어선수권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2005년부터 고 강민구(1926~2014) 유성CC 명예회장의 이름을 따 강민구배로 불리고 있다. 세계 랭킹 1위 고진영, 김효주, 김세영… 그동안 이 대회가 배출한 우승자가 한국 골프의 간판스타로 성장했다.
수억 원의 영업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유성CC가 사재를 털어가며 대회를 개최하고 있는 것은 2대에 걸친 극진한 골프 사랑 때문이다. 강형모 회장은 선친인 고 강민구 명예회장의 뒤를 이어 아마추어 골프에 지속적인 애정을 기울였다.
●아시아경기 2회 연속 금메달 4개 석권 이끌어
한국 골프를 아시아 최강으로 이끌었던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왼쪽)과 한연희 전 대표팀 감독.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10세 때 골프를 시작해 구력이 50년도 넘는 강형모 회장의 베스트 스코어는 6언더파. 1970년대 후반 골프 대표 선수도 했던 강 회장은 2004년부터 대한골프협회 강화위원장을 맡아 한국 골프 경쟁력 강화를 주도하고 있다.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아경기와 2010년 중국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한국 골프 선수단장으로 한연희 당시 대표팀 감독과 함께 2회 연속 금메달 4개 싹쓸이를 이끌었다.
2013년 골프장 오너 출신 첫 대한골프협회 상근 부회장에 올랐다. 대전에 살다가 서울에 따로 집을 구해 경기 파주에 있는 협회 사무실로 출퇴근을 하며 아마추어와 프로 골프 교류, 스폰서 유치, 경기력 강화, 국가대표 선발 및 국제대회 파견 등 협회 안팎에서 실질적인 살림을 책임졌다.
주먹구구 방식이던 국가대표 선발 시스템을 합리적으로 개편해 공정성을 높였다. 대표 훈련도 기량 뿐 아니라 정신력, 외국어, 인성 강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도 했다. 국제 대회 때는 활발한 스포츠 외교관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강 회장은 “어리게만 봤던 선수들이 어느새 훌쩍 성장해 인사라도 하면 그때가 가장 흐뭇하다”고 말할 뿐이었다.
강형모 대한골프협회 부회장이 2009년 4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퀸시리키트컵 대회에서 한국 선수단 단장을 맡아 3연패를 이끈 뒤 장하나, 박선영, 김세영(왼쪽부터)과 포즈를 취했다. 대한골프협회 제공
김재열 SBS 해설위원은 “강형모 부회장은 오랜 세월 선수강화위원장으로 국가대표 육성 뿐 아니라 한국 선수들이 국제무대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세계화에 일조했다”며 “한국 골프 발전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을 뿐 개인 욕심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평가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