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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이정은]“바보야, 문제는 북한이 아니라니까”

입력 | 2021-12-13 03:00:00

전통 외교안보 넘어 ‘경제안보’로
美中경제, 기술 경쟁 흐름 읽어야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3년간의 특파원 근무 종료를 앞두고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한 관계자에게 ‘앞으로 어떤 기자가 워싱턴에 오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경제와 기술, 인공지능(AI) 같은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정치와 외교안보의 중심인 워싱턴에 경제 전문가를? 멈칫하는 기자에게 그는 “미국이 요즘 대외적으로 ‘경제안보’ 이슈들에 얼마나 진심인지 안 보이느냐”고 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달 캐서린 타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방한 행보는 인상적이었다. 11년 만이라는 USTR 대표의 한국 방문은 일본, 인도를 아우르는 아시아 순방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가 무려 50분간 한국의 한 라디오방송과 인터뷰를 가진 것은 워싱턴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번 주에는 호세 페르난데스 국무부 경제차관이 한국을 찾는다.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 참석이라는 목적 자체는 새로울 게 없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새 변이인 오미크론 확산 우려가 커진 시점에 방한해 대면 회의를 강행한다는 데 눈길이 간다. 비슷한 시기 서울에서 열린 유엔 평화유지 장관회의에 참석하려던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방한을 취소하고 화상회의로 돌린 것과 대조적이다.

외교안보의 관점에서 글로벌 경제를 들여다보고 이를 정책적으로 엮으려는 미국의 시도는 반도체 공급망 문제가 불거지면서 급속히 속도를 내고 있다. 백악관이 직접 주재한 반도체 공급망 대책회의에는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원장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동시에 참석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간에 해외에서 공급망 회의를 주재하는 등 직접 나선다.

워싱턴발 경제 기사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21세기의 쌀’이라는 반도체의 공급 부족 문제를 놓고 기자는 삼성,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의 워싱턴 사무소를 취재했다. SK와 LG의 배터리 분쟁을 놓고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결정 체계부터 다시 들여다봤다. 물류대란과 인플레이션 악화 속에 ‘테이퍼링’을 비롯한 미국 금융당국의 움직임도 챙겨야 했다. ‘대포동 미사일’ 같은 북한의 무기 이름이 훨씬 익숙한 기자에게 이런 미션들은 때로 낯설고 막막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결국 핵심은 경제”라고 말한다. 군사력 증강과 대만해협 같은 외교안보 이슈도 중요하지만, 중국의 부상을 막겠다는 미국의 근본적인 문제 인식의 핵심은 경제에 꽂혀 있다는 말이다. 아시아 경제블록을 구축해 주도권을 쥐려는 기 싸움도 팽팽하다. 한 당국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던 ‘바보야, 문제는 경제라니까(It‘s the economy, stupid!)’를 새삼 상기시키며 “요즘 외교안보 상황에서 이 문장이 자주 생각난다”고 말했다.

요즘 워싱턴의 주요 인사 중에서 북한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종전선언도 여기서는 사실상 물 건너간 분위기다. 북한 문제는 한국에 여전히 최우선 순위의 안보 이슈이지만, 여기에만 매달리기에는 경제와 기술 패권 등 분야에서 미중 간 전략 경쟁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간다. ‘경제안보’가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는 흐름 속으로 맹렬히 달려들어야 하는 시점이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재명, 윤석열 대선캠프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이 경제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낸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특파원을 마치고 서울로 복귀하는 기자도 내년에는 5G 같은 통신과 기술, 경제 공부를 더 할 생각이다. 경제가 결국은 국가안보니까.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글로벌 안보의 물밑 흐름을 잡아낼 수 없는 시대가 됐으니까.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