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깊어지는 한국 줄타기 외교 美국방 “中의 모든 위협 방어”… SCM성명에 ‘대만해협’ 첫 명기 中정부 “엄중한 우려” 표명… 한미, 연합작전계획 최신화 합의 美선 “역내 다른 도전 고려”… 韓은 “北위협 대비 업그레이드” 향후 작계 논의 순탄치 않을듯
서욱 국방부 장관(오른쪽)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이 2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제53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신규진 정치부 기자
《“한마디로 분위기가 매우 좋았습니다.”
2일 서울에서 열린 제53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 직후 국방부 관계자는 기자단 브리핑 말미에 기자들에게 “양국 장관이 오늘 같은 넥타이를 맸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SCM이었던 이번 회담은 우리 군 요구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아 ‘참사’로 평가됐던 지난해 제52차 SCM과는 분명히 달랐다.
일단 우리 군은 미국의 동의를 얻어 지난해부터 진행하지 못했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이후 미래연합사령부의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평가 시기를 ‘내년’으로 못 박는 데 성공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기조에 따라 지난해 SCM에서 삭제됐던 ‘주한미군 현 전력 수준 유지’ 문구도 공동성명에 다시 담겼다.
전작권 전환 가속화 등 일부 성과와 한미동맹의 공고함을 재확인했다는 군의 이번 SCM 평가에도 불구하고 그간 미중 줄타기 외교를 해온 현 정부가 임기 말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 동참 압박으로 인해 큰 도전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 공동성명에 4번 등장한 ‘인도태평양’ 문구
국방부는 SCM에 처음 등장한 대만해협 관련 문구가 5월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문구와 동일하다면서 양국 간 추가적인 군사적 논의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회담에서 대만해협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고, 양국의 실무 논의 중에 ‘이 정도는 넣어야겠다’는 미국의 제안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만이 자국 영토의 일부라며 대만해협 문제를 타국이 거론하는 것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중국은 이 문구에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했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남중국해, 대만해협 등 미중 간 군사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역에서 동맹국들과 공동전선 확대에 힘을 싣고 있다. 특히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내세우며 항공모함, 핵추진잠수함 등 전략자산을 전개하고 있고 중국도 군용기를 대만 방공식별구역에 출동시키거나 남중국해에서 사격훈련을 벌이는 등 긴장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대만해협 문구에 대해 국방부는 ‘톤다운’(수위 조절)으로 대응했지만 양국 국방수장 간 공동성명인 만큼 그 군사적 함의가 작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이번 회담 곳곳에 강조됐다. 지난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인도태평양’ 문구는 이번 SCM 공동성명에 4번 명시됐고, 서욱 국방부 장관과 달리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공동기자회견 모두발언 초반부에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에 한미동맹이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고 강조했다.
○ ‘多채널’ 중국 견제 동참 압박 본격화
미국의 대중 공동전선 구축전략은 지난달 말 발표된 미 국방부의 해외주둔 재배치 검토(GPR·Global Posture Review) 결과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중국과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괌, 호주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군 활동 및 군사장비 투입을 확대하겠다는 것. 주한미군에선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와 포병대 본부가 상시배치로 전환된다. 이번 SCM 공동성명에 “주한미군의 현 전력 수준을 지속 유지한다” “오스틴 장관은 인도태평양 지역이 미 국방부의 최우선 전구(戰區)라는 점에 주목했다”고 명시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SCM에서 논의되진 않았지만 ‘미니 SCM’으로 불리는 9월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에서 미국의 요청으로 한미가 만들기로 잠정 합의했던 국방 분야 워킹그룹은 ‘동맹의 역할을 다하라’는 미국의 압박 창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 안팎에선 “미국 주도 안보동맹체인 쿼드(Quad) 동참에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자 미국이 채널을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이렇다 보니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에 따라 한미가 최신화하기로 한 새 작계에도 인도태평양 안보 상황에 따라 주한미군을 적극 활용하는 등 중국을 겨냥한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콜린 칼 미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8일 작계를 최신화하기로 한 것에 대해 “한국과 우리의 계획은 매우 활발하며 북한 위협의 진화와, 솔직하게(frankly) 말해 역내의 다른 도전을 고려해 계속 진화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향후 한미 간 작계를 만드는 논의가 순탄치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
이 같은 미국의 움직임에도 군 당국은 “(워킹그룹은) 특정국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SPG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작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 추진동력 확보했지만 여전히 안갯속
미국은 우리 군에 내년 하반기 연합훈련에서 FOC 평가를 하는 조건으로 절차를 준수하는 가운데 한미가 합의한 전작권 전환 ‘조건’에 대한 공동연구, 전작권 전환계획(수정 1호) 부록 및 별지 등 문서 개정을 선결 과제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은 SCM 공동성명에 이 과제들을 내년 5월 KIDD까지 마치기로 했다고 명시했다.
다만 오스틴 장관이 2일 SCM 이후 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FOC 평가의 ‘조기 시행’ 방안이 언급되면서 내년 3월 상반기 연합훈련에서 FOC 평가가 이뤄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한미 군 당국은 이와 관련한 후속 논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FOC 평가를 조기에 실시하더라도 전작권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단 FOC 평가가 이뤄지면 한미는 결과에 대한 보완점을 따져본 뒤 전작권 전환 연도를 결정하게 된다. 이어 전환 시점이 나오면 전환 직전 해에 3단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평가를 진행한다. 정부 소식통은 “내년에 들어설 새 정부 방침은 물론 미중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한미가 합의한 전작권 전환 조건 중 하나인 ‘역내 안보환경’은 큰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신규진 정치부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