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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과 여인’―궁핍한 시대의 상징[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입력 | 2021-12-14 03:00:00

박수근 전성기의 ‘고목과 여인’은 마치 화강암 표면에 새긴 마애불을 보는 질감을 느끼게 해준다. 한국 전통 석조문화를 터득한 그는 6·25전쟁 이후 어려운 시절을 상징하는 고목과 생활력을 드러내는 여인의 모습을 함께 담아냈다. 리움미술관 소장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


우람한 나무 한 그루. 과연 살아 있는 것일까. 나무의 아랫도리만 거창하지 상체는 심하게 잘려 나갔다. 그래서 거의 죽어 있는 듯 보인다. 험난한 세월이 할퀴고 간 자국. 그래도 고목은 의연하다.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죽기는커녕 새날을 예비하고 있다. 거인은 죽은 듯 동면에 들어 있지만 따스한 봄을 기약하고 있다. 그래서 옆구리에 새로운 가지를 뽑아 올리고 있다. 비록 가느다랗고 여린 것 같지만 살아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아니, 약동의 상징이다. 거대한 고목, 그렇게 쉽게 죽을 수 없다. 유구한 민족의 역사 또한 쉽게 사라질 수 없다. 아무리 혹독한 세월이라 해도 그냥 쓰러질 수 없다.

박수근의 ‘고목과 여인’(1960년대 전반·리움미술관 소장)의 상징성은 너무 크다. 8호 크기의 소품이지만 아주 당당한 화면이다. 이 작품은 박수근 전성기에 이룩한 걸작으로 화가의 특징이 다 들어 있다. 무엇보다 기름기 없는 유화 물감으로 화면에 우둘투둘하게 질감을 두었다. 색깔 또한 무채색으로 회색조이다. 마치 화강암의 표면에 새긴 마애불을 보는 듯하다. 사실 한국의 전통 문화는 돌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중국을 흙의 문화라 한다면, 일본은 나무의 문화다. 같은 탑을 가지고도 중국은 흙으로 만든 전탑(塼塔)이고, 일본은 목탑의 나라다. 반면 한반도는 석탑의 나라다. 경주 토함산 석굴암이 상징하듯 석조 문화의 전통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박수근은 화강암 파편을 매만지면서 캔버스 위에 돌의 질감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화가는 실제로 경주 답사를 하고, 마애불 탁본도 하고, 이를 미국의 후원자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생래적으로 터득한 석조 문화 전통, 박수근은 화단에서 독창성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현존 박수근의 예술세계는 6·25전쟁 당시 월남한 이후의 작품으로 헤아린다. 예외는 있지만 대부분 소품이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미술학교는커녕 일반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독창적 예술세계를 일구었다. 오늘날 ‘국민화가’로 추앙받고 있고, 사실 미술 시장에서 최고 가격의 인기 작가로 자리매김되어 있다. 화가는 치료비가 없어 눈을 멀 정도로 가난했는데 세월은 뒤집어진 것이다. 주옥과 같은 작품들, 얼마 전 작가 전작 도록 작업을 통하여 박수근의 전 생애 작품을 조사한 바 있다. 그 결과 유화 440여 점, 드로잉 450여 점 등 1300여 점이라는 숫자를 헤아리게 했다. 월남 이후 만년 15년가량의 작업치고는 적지 않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수준급이라는 점이다. 작가정신의 결정체(結晶體)라 할 수 있다.

화풍은 우둘투둘한 질감에 회색조 색채라는 표현 기법상 특징을 보이고 있다. 소재는 나무와 여인을 즐겨 다루었다. 여인은 중년 세대로 생활력을 담보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시장을 다니면서 가정을 이끌고 있다. 반면 박수근 작품에서 노동력 있는 청장년 세대의 남자는 만나기 어렵다. 전쟁 이후 가장 부재의 사회를 상징한다. 박수근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외롭다. 인고(忍苦)의 세월을 의미한다. 그들은 즐겁게 어울릴 여유조차 없다. 우두커니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다. 도시 변두리나 시골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아낙네. 박수근 세계의 단골이다. 그래서 박수근 그림은 어머니의 체취를 느끼게 한다. 모성(母性)의 보금자리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은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그림으로 묵묵히 일하는 중년 여성들의 인고의 세월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개인 소장

박수근이 즐겨 그린 것은 물론 나무다. 그렇지만 그 나무들은 정상이 아니다. 심하게 전지(剪枝)되어 자연스럽지 않다. 가지가 잘려 나간 것뿐 아니라 수직으로 제대로 자라지도 못했다. 구불구불 몸부림의 나무다. 굴곡진 삶, 갈등이다. 그것도 마구잡이로 잘려 나간 생애, 박수근 나무는 어려운 시절을 암시한다.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박수근 나무는 이파리 하나 없다. 겨울나무, 혹한에 시달리고 있는 고통 속의 나무다. 나목(裸木). 푸른 잎 하나 허용하지 않는 사회, 전쟁 이후 우리 모국의 풍경이다. 그래서 박수근 나무는 전쟁 이후의 궁핍했던 시대를 상징한다.

박수근의 대표적 도상 즉 나무와 아낙네, 이들을 한 화면에 넣어 집약한 작품으로 ‘고목과 여인’을 들 수 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가면 박수근 회고전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에서 볼 수 있다. 소품이지만 아주 당당한 그림이다. 키 작은 고목 옆에 광주리 이고 걸어가는 두 아낙네가 있다. 이들은 붉고 노란 저고리를 입고 있다. 화가가 악센트를 주어 색깔을 살짝 얹혔다. 아주 작은 그림이지만 많고도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하기야 박수근 작품은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 어찌 보면 작은 그림에서 박수근다운 특기를 쉽게 볼 수 있다. 미술 재료 하나 쉽게 구할 수 없었던 불우한 세월이었다. 1965년 유작전 당시 소품의 매매 가격은 1만 원 수준이었을 때, ‘고목과 여인’은 1만8000원에 거래되었다. 이 그림은 10년 뒤에 100만 원으로 매매되어 급상승했다. 현재의 가격은 무가(無價)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시장용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보물 중의 보물임은 아무도 부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실을 그리고자 한 소박한 작가의 태도가 이룩한 거룩한 예술세계. 박수근은 살아서 숱한 대중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