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직접 요리를 하십니까?”(진행자 지미 팰런)
“아니요. 질(와이프)이 합니다.”(조 바이든 대통령)
“요즘 지지율이 낮은 것에 신경이 쓰이십니까?”(팰런)
“(난처한 듯 얼굴을 긁적이며) 더 이상 신경 안 써요.”(바이든)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TV 심야토크쇼 ‘더 투나잇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했습니다. 취임 후 처음으로 심야토크쇼에 나온 것입니다. 최근 대통령의 대형 말실수 사건이 몇 건 있었던지라 재치 있는 입담이 중요한 심야토크쇼 출연이 적절한가를 두고 출연 전부터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2016년 ‘더 투나잇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한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왼쪽).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검은 선글라스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셀프 패러디로 화제가 됐다. 폴리티코
이번 출연은 처음부터 생생한 현장감은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초대 손님인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방송 스튜디오에 출연해 팰런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백악관에서 화상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또한 5분 정도 진행된 인터뷰였기 때문에 대통령의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이 같은 구조적인 한계에서 진행된 심야토크쇼 출연은 우려했던 대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보여준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계기가 됐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주제에서 벗어나기, 용두사미식 결론, 과거 이야기에 초점 맞추기, 산만한 대화 분위기 등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대통령 본인도 이를 의식했는지 팰런과의 대화 중에 “긴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결론은” 등의 표현을 자주 쓰며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려 했습니다. 팰런이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대통령이 말할 때마다 너무 크게 웃는 리액션을 보인 것이 부자연스러웠다는 평도 나옵니다.
최근 ‘더 투나잇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한 조 바이든 대통령(왼쪽). 팬데믹 상황 때문에 백악관과 방송 스튜디오를 연결하는 화상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뉴욕포스트
우리나라와 정치 풍토가 다른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심야토크쇼에 종종 출연합니다. 심야토크쇼에서 초대 손님과 진행자 간의 대화는 전반부 농담과 후반부 본론으로 구성됩니다. 전반부에서 개그성 대화로 관심을 끈 뒤 후반부에서 출연한 진짜 이유를 설명합니다. 연예인 초대 손님의 경우에는 신작 영화나 노래 소개가 후반부 본론에 해당합니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비슷한 포맷으로 진행됐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 달라진 일상 생활에 대한 소소한 잡담으로 시작해 인플레이션, 기후 변화, 선거법 개정, 코로나19 대응 등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1960년 ‘더 투나잇쇼 스타링 잭 파’에 출연한 존 F 케네디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미국은 민주주의 대문을 지키는 수호자”라고 말했다. NBC
미국에서는 언론에 자주 소개되는 성공적인 대통령의 심야토크쇼 출연 사례가 7개 정도 있습니다. 첫 사례는 1960년 ‘더 투나잇쇼 스타링 잭 파’에 출연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으로 시작합니다. 케네디는 심야토크쇼에 처음 출연한 대통령이기도 합니다.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그는 뛰어난 개그 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미국은 공산주의 침략에 맞서 대문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명언으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후부터 대통령의 토크쇼 출연은 ‘장기 자랑’으로 흘러갑니다. 1963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은 피아노를 연주했습니다. 15명의 바이올린 반주에 맞춰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을 선보였습니다. 1992년 ‘아세니오 홀 쇼’에 출연한 빌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하트브레이크 호텔’이라는 곡을 색소폰으로 연주했습니다.
1992년 ‘아세니오 홀 쇼’에 출연한 빌 클린턴 당시 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는 선글라스를 끼고 색소폰을 연주했다. TV인사이더
2016년 ‘더 투나잇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대머리 의혹 해소를 위해 진행자 팰런에게 자신의 머리가 가발이 아니라며 직접 만져보라고 했습니다. 2016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자신의 업적을 랩송으로 만들어 노래했습니다.
2016년 ‘더 투나잇쇼 스타링 지미 팰런’에 출연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선후보(왼쪽)는 자신의 머리가 가발이 아니라며 팰런에게 직접 만져보라고 했다. 데일리메일
심야토크쇼에 출연하는 미국 대통령이나 정치인들은 체면과 격식은 버리고 철저히 오락에 주력합니다. 늦은 시간에 방송되는 심야토크쇼는 시청자가 하루의 짐을 벗어버리고 편안하게 즐긴다는 정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머 코드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어정쩡한 모습을 보여준 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심야토크쇼 출연에 대해 “실망스럽다”는 평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과거 심야토크쇼에 출연해 히트를 쳤던 적이 있습니다. 2016년 부통령 시절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입니다. 당시 그는 방송 스튜디오에서 자신을 대표하는 두 가지 트레이드마크인 검정 선글라스를 끼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파격적인 장면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힐러리 클린턴-트럼프 대선후보 TV 토론을 평가해달라는 팰런의 요청에 난데없이 삼위일체 성호를 그으며 기도를 하더니 “세상에나, 그렇게 지식이 딸리는 사람(트럼프)은 처음 봤다”는 농담으로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물론 출마 부담감이 없는 임기 말 부통령 자격으로 출연했던 5년 전과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다릅니다. 하지만 이번 심야토크쇼 출연으로 최대 목적이었던 지지율 만회는 힘들 것이라는 냉정한 평가가 나옵니다. 그나마 대형사고 급 말실수가 없었던 것을 최대 성과로 꼽아야 할 듯합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