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인근 규모 4.9 지진 놀란 주민들 아파트-건물 밖 대피 올들어 가장 강력…역대 11번째 전문가 “동일본 대지진 영향 추정”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5시 19분 서귀포시에서 서남서쪽 41㎞ 떨어진 해역에서 규모 4.9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지진 중 11번째, 올 들어 발생한 지진 중에서는 가장 강력한 지진이다.
바다 건너 광주 전남 전북 부산 경남 대전 서울까지 건물 흔들림과 진동이 감지돼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전국 각지에서 접수된 지진 감지 및 피해 신고는 오후 7시 현재 167건에 달했다.
● 냉장고 흔들리고 사무실 집기 떨어져
공부방을 운영하는 한 주민(42)은 “아이들과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창문이 세게 흔들렸고 몸으로도 진동을 느꼈다”며 “아이들이 놀라서 울먹이기도 했지만 모두 침착하게 책상 밑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진앙지에서 가까운 대정읍내에서는 조립식 건물이 흔들렸고 교통상황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는 강풍을 맞은 것처럼 한동안 초점을 잡지 못했다. 주민 이승훈 씨(50)는 “갑자기 창문이 ‘우두두’하는 소리와 함께 흔들렸다”며 “밖으로 나가보니 다른 주민들도 두려움에 떨며 재난문자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에서도 진동이 느껴졌다. 마라도등대 박종옥 소장(53)은 “아주 짧은 시간 흔들렸는데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다”고 설명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자가 격리중이던 주민들도 불안감에 떨어야 했다. 얼마전 미국을 다녀온 이모 씨(59)는 “코로나19 검사로 음성이 나왔지만 자가격리를 겸해서 집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집이 흔들리니까 밖으로 나가야할지 고민이 됐다”고 토로했다.
지진은 전남, 광주지역에서도 감지될 정도로 강도가 컸다. 제주와 가장 인접한 전남에서도 “지진이 난 것 맞느냐” 등의 문의전화가 빗발쳤다. 진앙지에서 180㎞가량 떨어진 목포에 사는 주부 김모 씨(55)는 “지진이 발생 문자를 받고 몇 초 후 갑자기 주방 창문이 세게 흔들렸다”고 밝혔다. 해남에 사는 40대 주부 김모 씨는 “음식을 하고 있는데 집이 흔들려 급하게 가스를 껐다. 무서워서 남편에게 조심해 들어오라는 전화를 했다”며 목소리가 떨렸다.
230㎞ 떨어진 광주에도 건물이 3, 4초간 흔들렸다. 직장인 A 씨(29)는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경보 소리와 함께 건물이 좌우로 흔들려 깜짝 놀랐다”고 초조해했다.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 전남 일대 12기의 원자력발전소는 별다른 피해 상황이 보고된 것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역대 11번 째 강력한 지진…동일본지진 영향 추정
기상청은 지진 발생 직후 규모 5.3 규모로 공지했다가 4.9 규모로 바로 잡았다. 위치도 서귀포시 서남서쪽 32㎞ 해역에서 41㎞ 해역으로 수정했다. 이번 지진은 거의 모든 제주 주민이 진동을 느끼고 그릇이나 창문이 깨지는 수준의 흔들림으로, 불안정한 물체는 넘어질 수 있는 수준이었다.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지진은 2016년 9월 12일 경북 경주에서 발생했다. 당시 규모 5.8의 지진이 나 9300여 건에 달하는 인명와 재산 피해를 입었다. 2017년 11월 15일 경북 포항에서 역대 두 번 째로 큰 규모인 5.4의 지진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지진은 큰 규모의 지진인 만큼 여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서귀포 남쪽 바다에서 그동안 규모 2~3의 지진이 자주 발생했지만 4.9 규모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이례적”이라며 “2011년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이 계속된 결과로 추정된다. 여진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