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10주년 〈중〉 학생-주부-회사원 등 신분 다양 5·18 당시의 상황 진솔하게 담아 한국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
“공포. (전남)도청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젊은 언니 오빠들을 잡아서 때린다는 말을 듣고 공수부대 아저씨들이 잔인한 것 같다. 꼭 김일성이 쳐들어 올 것 같다. 하루빨리 이 무서움이 없어져야겠다.”
1980년 5월 19일 당시 광주 동구 동산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김현경 씨가 쓴 일기 내용이다. 김 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폭력, 시민들의 저항과 항쟁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 하지만 동산초교는 5·8 격전지인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고 전남도청에서도 불과 직선으로 1.3km 거리였다.
근시 교정을 위해 금남로에 있는 병원을 다녔던 김 씨는 대학생 시위 상황 등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일기에도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이야기를 듣고 무서움에 떨었다고 썼다. 당시 일기에는 18일 ‘무서움’, 19일 ‘공포’, 20일 ‘무섭다’라는 제목을 붙었다.
주부 허경덕 씨는 5·18 당시 하숙을 치고 있었는데 하숙생을 굶기게 될까 봐 걱정하는 심정을 일기에 썼다. 또 항쟁에 참여하는 청년들에게 밥을 해주면서도 남편 직장인 우체국 이름이 적힌 수건을 주지 못했단다. 청년이 계엄군에게 붙잡혀 남편에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5·18 기간 동안 남편이 몸이 아파 병원에 데려가는 과정에서 계엄군이 총을 들이대자 놀라 넘어질 뻔한 사연도 적었다. 그는 초등학교 때 6·25전쟁을 겪었지만 직접 서슬 퍼런 군인들을 본 적이 없어 잔뜩 겁을 먹었다는 느낌도 기록했다.
허 씨는 5·18 당시 계엄군과 시민들의 싸움 등 엄혹한 상황에서 평화로운 해결에 대한 희망을 일기에 담았다. 이런 생각은 그의 동생이 공수부대에 복무 중이라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된다. 또 일기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평범한 시민 생각을 이렇게 적었다.
“전두환! 이 사람은 누굴까? 물론 우리나라 사람이고 군인이고 그중에서 높은 지휘자이고… 나라 발전일까? 자기 욕심일까? 모르겠지만 자기도 부모가 계실 거고, 아내가 있고 아들딸도 있을 거고. 싫고 밉고 두렵고. 이런 낙서까지 누가 볼까 조심된다.”
주소연 씨(59)는 5·18 당시 고3 학생으로 전남도청에서 취사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일기를 썼다. 주 씨는 1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5·18 당시 모두가 두려움에 입을 닫았다. 아직도 5월 진실 규명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도행 씨는 1980년 5월 18일 광주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 모습을 보고 분노해 시위에 참여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이 씨는 5·18민주화운동 이후 신군부의 단속을 걱정해 충북 제천으로 이사했다가 지난해 40년 만에 고향 광주를 찾아 오월일기를 기증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제공
오월일기는 평범한 시민들이 겪었던 각자의 5·18 경험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민주화운동에는 당시 73만 광주 시민이 모두 참여했다. 시민들 스스로 역사 현장을 일기를 통해 남겨 오월일기는 증언이자 기록으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