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기록물’ 유네스코 등재 10주년〈하〉나의갑 前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집권 위해 저지른 5·18행적 정리 ‘전두환 회고록’ 조목조목 비판 “그의 한마디가 사실상 최종명령”
나의갑 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은 “5·18민주화운동이라는 공식 명칭 뒤에 ‘전두환의 광주 폭동’이라는 부제를 달아 5·18의 책임자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심미안 제공
지난달 23일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는 한마디 말, 한마디 사과도 없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하루 전 공교롭게도 그의 ‘회고록’을 정면으로 겨냥한 책이 나왔다. 나의갑 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72)이 4년여 집필 작업 끝에 펴낸 ‘전두환의 광주폭동이라니요?’(심미안·사진)다.
1980년 전남일보(현 광주일보) 사회부 4년 차 기자로 현장을 누빈 그는 5·18의 도화선이 된 전남대 정문 앞 충돌부터 5월 27일까지 5월 항쟁의 전 과정을 눈으로 지켜보고 자신의 취재수첩에 기록했다.
그가 책을 쓴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전 씨가 말한 폭동은 광주시민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전 씨가 일으켰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당시 ‘쓰지 못한 죄’에 대한 고해성사다. 당시 그가 쓴 기사는 광주 505 보안부대의 검열로 단 한 글자도 게재되지 못했다.
―책이 나온 다음 날 전 씨가 사망했다. 어떤 마음이 들었나.
“책을 인쇄하고 있을 때 사망 소식을 들었다. 전 씨를 위한 책이었는데 그가 책을 못 보고 숨져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죽었다고 해서 광주에서 저지른 그의 역사적 악행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5·18 당시 전 씨가 5·17 쿠데타의 완성을 위해 5·18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명명백백하게 규명해내는 것이 살아 있는 우리들의 과제다.”
―기존 5·18 관련 출판물과 다른 점을 꼽는다면….
“5·18 전개 과정을 기록하거나 광주의 저항에 중심을 둔 기존의 출판물과는 달리 전 씨를 전문(全文)으로 취급했다. “광주사태에 나는 없다”는 ‘전두환의 5·18’에 포커스를 맞췄다. 먼 시간 속에 묻혀 있는 전두환, 조작과 미화로 원형이 훼손된 전두환, 대리인을 운용하는 전두환, 기록 속 미발견 전두환 등을 낱낱이 끄집어내고 여기저기 흩어져 낱개의 기록으로 잠자는 전두환을 역사 앞에 소환했다.”
“1994년 11월부터 1996년 2월까지 진행된 검찰의 12·12 및 5·18사건 1차 수사 및 재수사 검찰 수사기록과 1997년 대한민국재향군인회가 출간한 ‘12·12 5·18 실록’, 1982년 보안사령부 주도로 발간한 비밀의 책 ‘제5공화국전사(前史)’, 보안사령부 정보처 정보1과장 한용원 중령의 ‘한용원 회고록’, 1980년 7월 20일 일본에서 펴낸 책자 ‘한국 1980년 5월, 광주민중의 결기’ 등에서 전두환의 새로운 5·18을 상당수 발굴했다.”
―전 씨의 광주 행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는데….
“5·18 기간 중에 보안사령부의 ‘광주 상황’ 일일정보를 미국에 제공한 것,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지시로 ‘보안사 광주 분실’이 설치되고 그가 이틀에 한 번씩 국방부 회의에 참석한 것, 선무공작을 위해 최규하 대통령을 광주에 보내고 이희성 계엄사령관의 ‘증언 참고 자료’에 나오는 전두환의 위치와 전 씨가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에게 부하를 보내 “전북을 지켜 달라”고 부탁한 것 등 그의 5·18 행적을 26개로 정리했다. 이는 거역할 수 없는 ‘전두환의 5·18 지휘 증명서’라고 할 수 있다.”
―왜 5·18을 ‘전두환의 광주 폭동’으로 불러야 하나.
―앞으로 계획은….
“보안사령부의 주도로 진행된 5·18 조작의 내력을 추적하려 한다. 5·18 광주에 대한 ‘폭력’이 끝나지 않고 있어서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