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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터샷 의무화-어린이 접종 확대’속 반대 시위 번지는 유럽

입력 | 2021-12-16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



11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부르스광장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반대 시위에 참가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광장 한쪽의 가로등에 ‘어린이 접종 반대’란 문구가 쓰인 종이가 붙어 있다(오른쪽 작은 사진). 파리=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김윤종 파리 특파원


《11일(현지 시간) 점심 무렵 프랑스 파리2구의 부르스 광장. 이날 오후 1시부터 이곳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반대 시위, 즉 ‘안티 백신(anti vaccine)’ 시위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이곳을 찾았다. 광장에는 백신 반대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주변에 총으로 무장을 한 경찰도 보였다. 주변 곳곳에는 ‘어린이 접종 금지’가 쓰인 종이도 붙었다. ‘백신이 사람을 죽인다’는 팻말을 든 한 여성은 “코로나19 백신의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아이들에게도 백신을 맞힌다니 용납할 수 없다”며 시위에 참석한 이유를 밝혔다.》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고, 오미크론 변이까지 빠르게 퍼지면서 유럽 주요국은 백신 추가 접종(부스터샷) 의무화, 5∼11세 아동에 대한 접종 시작 등 강도 높은 방역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백신 반대파들은 이런 조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뿐 아니라 백신의 효과와 안전성 또한 신뢰할 수 없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시위가 시작된 후 참가자에게 참석 이유를 물었다. 30대 회사원 가브리엘 씨는 “정부가 처음에는 18세 이하 및 임산부는 접종하지 않겠다고 해놓고선 말을 바꿨다. 신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40대 직장인 로라 씨는 “2차 접종을 마쳤지만 지난달 코로나19에 돌파 감염됐다. 심하게 앓았고 겨우 회복됐다”며 3차 접종을 거부하겠다고 했다. 영국 가디언은 “개인의 자율성을 중시하던 유럽 각국이 최근 오미크론 확산 등에 따라 백신 의무화 정책으로 선회하면서 오스트리아 벨기에 등 유럽 곳곳에서 시위대가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녀 접종 거부하는 학부모들

일간 르피가로는 최근 백신 접종 반대 움직임이 더 커진 이유로 어린이 접종을 꼽았다. 프랑스는 20일부터 5∼11세 전체 아동에 대한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전국 학교 중 약 절반에서 1명 이상의 감염자가 나오면서 당국으로선 더 이상 어린이 접종을 미룰 수가 없어진 것이다.

반면 학부모들은 자녀 접종을 꺼린다. 최근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의 설문 결과 6∼12세 자녀를 둔 부모의 62%가 자녀의 백신 접종에 반대했다. 7세, 5세 딸을 둔 주부 소니아 씨(38)는 “특히 여자아이의 호르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딸들에게 백신을 맞히지 않겠다”고 말했다.

장 카스텍스 총리(56)는 11일 자신과 11세 딸의 사례를 소개하며 학부모들에게 진정으로 자녀를 위한다면 백신을 맞히라고 권유했다. 그는 2차 접종을 마쳤음에도 지난달 22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은 돌파 감염자다. 카스텍스 총리는 “내가 돌파 감염된 후 딸 또한 확진 판정을 받았다”며 “어린이 접종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 전체의 5∼11세 아동은 약 2700만 명이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도 15일부터 5∼11세 아동 접종을 시작했다. 독일 수도 베를린 등 일부 지역은 13일부터, 나머지 지역은 15일부터 역시 같은 나이대의 아동 접종을 시작한다. 영국 보건당국은 성탄절인 25일 전에 아동 백신 접종을 최종 승인하기로 했다.


확진자 급증에 증명서 위조까지

주요국이 어린이 접종과 부스터샷 의무화에 나선 것은 최근 유럽 각국에서 신규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백신 접종 위조 증명서 또한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4일 1138명까지 감소했던 프랑스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는 11일 5만3720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오미크론 감염자도 누적 150명이 넘었다. 이에 당국은 15일부터 65세 이상의 부스터샷 접종을 의무화했다. 18∼64세는 내년 1월 15일부터 반드시 부스터샷을 맞아야 한다. 18세 이상 성인이 백신 2차 접종 후 7개월 안에 부스터샷을 맞지 않으면 기존 백신 접종증명서가 무효화된다.

백신 접종증명서를 위조하면 최대 5년의 징역형 혹은 15만 유로(약 1억9500만 원)의 벌금을 내야 하지만 위조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제랄드 다르마냉 프랑스 내무장관은 12일 “허위 증명서를 수천 개 적발했으며 현재 약 400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또 상당수 위조 사례에 의사, 간호사 등 의료 인력이 연루됐다고도 밝혔다.

파리 시민 이리나 씨(40) 또한 “지인의 증명서 중 QR코드 부분만 캡처해 식당 등에서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부스터샷까지 의무화하면 접종증명서를 위조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가짜 접종증명서 사용자 중 코로나19에 실제 감염돼 사망하는 사례도 나왔다. 파리 인근 오드센에 사는 57세 여성은 이달 초 코로나19에 감염돼 입원했다. 의료진은 이 여성이 소지한 백신 접종 증명서를 확인한 후 2차 접종까지 마쳐 중증도가 심하지 않다고 판단해 인공호흡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 증명서는 가짜였고 상태가 악화된 해당 여성은 10일 숨졌다.

미접종자에 대한 벌금 부과 등 더 센 정책을 도입하는 나라들도 있다. 그리스는 내년 1월 16일부터 60세 이상 미접종자에게 매달 1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한다. 오스트리아 역시 내년 2월부터 14세 이상 국민이 백신을 맞지 않으면 2개월마다 최대 3600유로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백신 갈등 계속될 듯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백신 접종을 둘러싼 사회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13일 프랑스 파리 외곽 몽발레리앵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 추모비에는 정부의 백신 접종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동상에 ‘안티 패스(ANTI PASS)’라는 낙서가 그려졌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국가에 대한 모욕이다. 관련자를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곳곳에서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정치적 양 극단에 있는 극우와 극좌 세력이 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백신 반대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유럽 극우파는 백신 의무화가 정부의 시민 통제 수단이라고 외친다. 극좌파는 정부가 다국적 제약사 등 거대 자본과 결탁해 시민을 상대로 제약사 배만 불려주는 실험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지지 기반이자 옛 동독 지역인 동부 작센주에서는 지난달 기준 코로나19 백신 2차 접종률이 58%에 그쳤다. 옛 서독 지역이며 경제가 발달한 브레멘(80%), 함부르크(74%) 등보다 훨씬 낮다. 15일 경찰은 작센의 일부 백신 반대 시위자의 거처를 급습했다. 이들이 주 방역 지침에 반발해 미하엘 크레치머 주 총리의 살해 음모를 꾸몄기 때문이다. 제레미 워드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 연구원은 르피가로에 “백신 중심의 방역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부와 국민 사이의 신뢰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며 백신 반대파를 설득하려는 당국의 노력을 주문했다.




김윤종 파리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