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적만 내세우는 현 정권에 실망한 국민 분열 속 감정 싸움하는 야권에도 실망 선출된 지도자에 협력하는 지도층 필요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국민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년 동안 정치계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슨 일을 했으며 무엇을 남겼는가? 자연히 그 책임은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권에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꿈과 희망을 약속했다. 그러나 청와대가 정권의 주체가 되면서부터 대한민국의 정치는 방향을 상실했고 행정은 국내 정치의 질서를 혼란에 빠뜨렸다. 출발부터 잘못된 원인은 운동권 출신과 여당 강경파가 정권을 독점한 데 있다. 국민은 지금까지 함께 일했고 앞으로도 운명을 같이할 동역자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를 믿고 싶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국무총리를 비롯한 장관과 행정기관 중추 임무를 담당하는 정부 요인들을 청와대의 심부름꾼으로 전락시켰다. 법무부 장관들은 검찰개혁 명분을 내세워 그들을 정권의 하수인으로 만들었다. 진실과 공정을 위한 업무와 질서도 스스로 무너뜨렸다. 국민을 위한 법치가 아닌 정권을 위한 예속 수단으로 삼았다. 공수처를 여당 강경파가 탄생시켰다. 지금도 잘했다고 박수 치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조국 장관 임명과 여당 열성 지지자들의 억지스러운 행위가 어떤 결과가 되었는가. 권력이 정의의 가치도 바꿀 수 있다는 사회악의 과오를 범했다. 청와대와 여당 강경파 인사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의 정도를 넘어 지금은 문 대통령을 위한 명분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인상까지 보여준다. 문 대통령에게는 실정은 없고, 존경받을 업적을 남겼다고 과장하는 태도가 대통령과 국민의 유대를 단절시켰다.
지난 ‘수출의 날’ 행사 때도 그랬다. 경제 업적은 과소평가받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국민들은 과거의 어떤 정부보다도 문 정부 기간에 대기업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잘 알고 있다.
야권을 대표하는 국민의힘도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는 거의 자취를 감추어 버린 상태였다. 얼마나 무능했으면 비대위원장을 외부에서 영입했겠는가. 그 와중에도 친박, 비박의 수준 낮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바로 그와 같은 친문, 비문의 대립이 문 대통령과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전철을 모르는 상황이었다. 우리 정치계를 제3자가 보면 이해하기 힘들다. 문 정권에서 쫓겨난 공직자들이 야당에 합류해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면 그 모순과 역설적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선한 정치는 사라지고 지도자들은 어디에도 없었다는 결과를 만들었다.
국민들은 국민의힘이 윤석열을 비롯한 공직에서 추방된 인사를 기꺼이 받아들였는지, 마지못해 수용했는지, 충분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번에 벌어진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서 드러난 현상이다. 그러나 여야를 물을 것 없이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만 있지 지도자와 협력해 더 큰 목적을 이루겠다는 애국심을 갖춘 지도자가 없었다.
도산 안창호의 생각이 떠오른다. 자신은 임시정부 한직에 자족하면서, 협력을 포기하고 분열을 일삼는 사람들을 찾아가 설득하며 애태우곤 했다. 좌와 우의 대립은 독립 이후의 과제니까 지금은 분열의 불씨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면서 긴 세월을 보냈다. 언제나 자신보다 더 유능한 지도자를 섬기고 돕는 모범을 보여 주었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이 그의 ‘지도자론’이다. 우리에게는 지도자가 없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를 선출했으면 그가 존경받고 성공하는 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협력하는 애국적인 지도층이 없는 것이 문제라는 결론이다. 지도층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앞으로도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경제정치의 중산층에서 지도층이 태어나고 그 지도층의 대표가 지도자가 되도록 협조하는 지도층이 아쉬운 세상이다. 대통령을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들은 애국심보다 정권을 탐하는 측근임을 대통령은 명심해야 한다.
성숙된 민주사회에는 네 편, 내 편이 존재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정해진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가야 할 방향을 국민과 함께 찾아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정이 중요하다. 목표 대신에 휴머니즘에 입각한 방향이 중요하다. 우리가 러시아, 중국, 북한과 협조적인 개혁과 복지를 지향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견지하는 것은 그것이 정치의 바른 길이며 모든 인간이 찾아 누려야 하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 존중의 방향이기 때문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