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
“더 이상 해줄 것이 없습니다.” 환자가 말기 암이 진행돼 임종기에 접어들 때 의사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환자와 보호자를 무한 절망으로 빠뜨리는 말이다. 의대생 수업을 할 때는 환자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누차 강조하지만, 현실에서는 계속 반복된다.
치료와 돌봄은 다르다. 치료는 병을 바라보고 돌봄은 사람을 바라본다. 더 이상 항암치료가 어렵고 암 말기 임종기로 접어들게 되면 환자에게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해줄 것이 더 많아진다. 식사를 챙기고, 용변 보는 것을 돕고, 환자의 고통이 덜하도록 해야 한다.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고통이 연달아 오기 때문에 인간다운 생활과 건강을 유지하도록 관심을 가지고 보살펴야 한다. 이것이 돌봄이다.
하지만 우리는 돌봄에 가치를 부여하는 데 인색하다. 돌봄은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무척 버겁고 힘든 일이다. 돌봄 제공자의 희생이 어느 정도 동반되다 보니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대개 여성, 노인, 저임금 노동자 등에게 전가되곤 한다. 문제는 그렇게 돌봄이 누군가에게 떠밀려지면서 그 가치가 폄훼된다는 점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역시 마찬가지이다. 무료 서비스로 인식되며, 어차피 곧 죽을 사람들이니 굳이 돈 들여서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취급을 받는다. 호스피스에 대한 의료보험 수가라는 것이 있다고는 하지만 수가라고 하기에 민망한 정도이다 보니, 검사를 하고 항암제를 쓰고 중환자실 가는 것이 병원 입장에서는 적자를 면할 합리적인 방법이 된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 말기 환자에 대한 선택지는 너무 많은 과잉 의료와 너무 적은 돌봄, 이 두 가지밖에 없다.
사람은 늙고 병들고 쇠약해지며 어느 시점이 되면 거동이 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 된다.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반드시 그렇게 된다. 그러니 더 이상 해줄 것이 없다는 그 시점부터가 돌볼 것이 많아지는 시점이다. 무의미한 치료는 있어도 무의미한 돌봄은 없다. 돌봄의 가치는 인정받아야만 한다. 돌봄은 계속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돌보며 온기를 나눠야만 한다.
김범석 서울대 혈액종양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