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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그만하기엔 너무 아까운 미성

입력 | 2021-12-17 03:00:00

새 앨범 ‘OLD&NEW’ 22일 발표하는 ‘마성의 가창력’ 이광조
히트곡 리메이크 9곡에 신곡까지
40년 인연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통기타 반주만으로 10곡 모두 녹음
칠순이지만 살아있음 보여줄 것



데뷔 45주년, 우리 나이로 칠순. 가수 이광조에게도 세월의 풍파는 닥쳤다. 미성과 절창만은 망망대해에 마주 선 주상절리처럼 오뚝하다. 15일 서울 강남구 스튜디오의 거울 앞에 선 이 씨는 “올해와 내년이 어쩌면 가수로서 이광조의 마지막일지 모른다. 내가 나의 방식대로 살아 있음만은 꼭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네가 도와주면 남이 못 알아줘도 좋아. 네 기타 소리에 다시 한번 노래해 보고 싶다.”

가수 이광조 씨(69)가 올해 초 기타리스트 함춘호 씨(60)에게 한 말이다. 그리고 둘은 서울 강남구 ‘사운드솔루션’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고수와 소리꾼처럼 음(音)의 세계를 나눴다. 메트로놈의 일정한 박자도 없이, 오직 지음(知音)끼리 소통할 수 있는 호흡과 음률의 흐름에 투신한 것이다.

이광조의 신작 ‘OLD&NEW’ 표지. 글씨는 그의 오랜 동료 가수 남궁옥분의 솜씨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으로 유명한 이 씨가 함 씨의 통기타 반주만으로 노래한 앨범 ‘OLD&NEW’를 22일 낸다. 사운드솔루션 스튜디오에서 15일 이 씨를 만났다. 그는 “서로의 숨소리를 읽으며 판소리 한바탕처럼 음반을 만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각별하다. 대한민국 대표 세션 연주자인 함 씨의 프로 데뷔작이 1981년 이 씨의 ‘저 하늘의 구름 따라’이다. 이번 신작은 두 사람의 40년 인연에 특별한 쉼표도 된다.

이 씨는 신작에 1976년 데뷔곡 ‘나들이’부터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오늘 같은 밤’ 등 대표곡을 새로운 편곡과 노래로 망라했다. 해안절벽을 들이받는 노도처럼 명징한 음색과 절창이 여전하다. 이 씨의 각혈 같은 가창으로 이름난 ‘가까이 하기엔…’은 원곡과 달리 후렴구를 부드러운 가성으로 처리했는데 그 미학이 또 그대로 절묘하다. 신작 제작은 오기(傲氣)로 시작했다고.

“지난해 병원에 갔다가 ‘옛날에 제가 참 좋아했는데’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이 인간 아직 안 죽었네’, 이거 한번 딱 보여주고 싶었죠.”

이 씨는 스무 살 때까지 음악 듣기만 좋아했지 노래라곤 제대로 해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 친구들의 채근에 캐나다 가수 조니 미첼의 노래를 불렀다가 다음 날 ‘우리 학교에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고. 당시 김민기, 현경과 영애, 이정선이 재학 중이던 서울대 미대와 교류 행사를 앞두고 친구들은 이 씨를 홍대 대표 대항마로 추대했고, 그 계기로 등 떠밀리듯 프로의 세계로 나왔다.

이 씨는 “까칠하고 괴팍한 성격, 무대공포증 탓에 활동을 오래 즐기지 못했다”고 했다. 2000년 영영 음악을 접고자 미국 샌프란시스코로 혈혈단신 떠나 자유인처럼 살기도 했다. 노모의 병환으로 2012년 귀국한 뒤 음악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함춘호

“춘호의 기타 연주는 춘호의 마음 같아요. 맑고 깨끗하죠.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어요. 가창자로서 화려한 악기 편성 뒤에 숨을 수 없지만, 맨밥에 고추장 하나 비벼도 정말 맛있는 끼니 같은 음반을 만들고 싶었어요.”

신작에는 9곡의 ‘셀프 리메이크’ 외에 1개의 신곡(‘우리 떠나 가요’)도 담았다.

“무대공포증이 여전해요. 하지만 내년엔 신곡으로 스윙 재즈 장르에 새로 도전할 거예요. 중절모와 지팡이를 돌리면서 재즈 밴드 앞에 서서 프랭크 시내트라처럼…. 저, 아직 여기 살아 있습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