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책의 향기]“나홀로 육아 늘면 공감능력 퇴화할 수도”

입력 | 2021-12-18 03:00:00

◇어머니, 그리고 다른 사람들/세라 블래퍼 허디 지음·유지현 옮김/540쪽·2만5000원·에이도스



인류는 ‘협력 육아’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베푸는 본성을 키울 수 있었다. 소녀들이 아기를 돌보는 아프리카 부족(위쪽 사진)과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젊은 엄마가 홀로 육아를 하는 장면. The Baby Historian·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모든 종(種)에서 자식을 키우는 건 생존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사람들이 서로 마음을 이해할 수 있고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고유한 육아 방식 덕이다. 미국 인류학자이자 영장류학자인 저자는 많은 구성원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인간의 ‘육아 협력’을 깊이 분석했다.

현대 기준으로 인간이 성인이 되기까지 약 18년에 걸쳐 1300만 Cal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만큼 육아는 혼자 감당할 수 없는 과제다. 그렇기에 인간은 다른 유인원과 달리 자신의 아이를 종종 친척과 이웃들에게 맡긴다. 공동육아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 읽기’ 능력도 생긴다.

책에 따르면 아프리카 하드자족은 할머니와 이모할머니, 손위 형제, 이웃 방문객이 함께 아이를 돌본다. 이 부족의 갓난아기는 출생 직후 처음 며칠 동안 전체 시간의 85%가량을 어머니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안겨 있다. 아프리카 에페족이나 아카족 여성들은 돌아가며 신생아에게 젖을 물린다. 유인원의 경우 어미가 다른 암컷에게 새끼를 맡기는 일이 거의 없다.

저자는 공동육아 과정에서 할머니의 역할에도 주목한다. 아카족은 일반적으로 출산 직후 외할머니가 신생아를 물에 씻기고 천으로 감싸며 태반이 모두 나올 때까지 태아를 들고 있다. 초창기 인류학자나 생물학자들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나이 든 여성들의 육아 역할을 낮게 평가했다. 하지만 육아는 모성 본능보다 경험과 학습이 더 중요하다. 저자는 인간의 양육에서 할머니가 담당하는 다양한 역할에 대한 인류학 증거들을 제시한다.

현대의 육아 현실은 산후우울증이라는 용어 이상으로 우울하다. 갓 태어난 영아를 유기하거나 살해하는 사건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육아 협력’의 울타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멀리 떨어져 있고 부부는 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장소에서 일하고 있어서다. 보육원이 있지만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곳은 비용을 감당하기가 벅차다. 이런 상황 탓에 최근 많은 여성들이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포기하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학대나 방임의 위험이 높은 인구집단에서는 최대 80%의 아이들이 양육자를 두려워하는 ‘혼란스러운 애착’을 보인다. 이에 비해 정상적인 중산층 가정 아이들의 15%가량이 혼란스러운 애착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공격적이고 다른 이의 감정을 잘 해석하지 못하고 행동장애를 겪을 위험이 높다.

저자는 지구 온난화와 팬데믹도 우려스럽지만 무엇보다 우리 후손이 미래에도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한다. 공동육아의 붕괴로 인해 다른 사람과 공감하고 호혜성을 추구하는 인류의 특성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 산후우울증은 단순히 엄마에 그치는 비극이 아닌 인류 전체의 본성을 바꿀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인 셈이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