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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된 K-9에 숟가락 文… 레드백 수출도 성사될까

입력 | 2021-12-18 10:31:00

韓·濠 정상회담 직후 “올림픽 외교 보이콧 검토 안 했다” 밝혀… 호주 측 싸늘해져




한화디펜스의 미래형 보병전투장갑차 ‘레드백’. 사진 제공 · 한화디펜스

2010년 연평도 포격전 때 위용을 보인 K-9 자주포가 호주에 상륙한다. 12월 13일 K-9 생산업체 한화디펜스가 호주 방위사업청 격인 획득관리단과 1조 원 규모의 K-9 자주포 30문, K-10 탄약운반장갑차 15대 수출 계약을 맺었다. 호주는 터키, 폴란드, 핀란드, 인도, 노르웨이, 에스토니아에 이은 일곱 번째 K-9 도입국이 됐다.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의 K-9 도입도 유력해 보인다. 이집트는 현대로템 K-2 흑표전차도 함께 도입하려는 것으로 알려졌다.



1조+5조 원 방산 쾌거 임박했는데…


K-9 자주포. 뉴시스

이번 수출로 한화디펜스는 세계 자주포 수출시장 강자로서 K-방위산업을 선도하게 됐다. 그럼에도 축배를 들긴 아직 이르다. 내년 말 호주에서 더 큰 규모의 무기체계 도입 사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호주는 장갑차 400여 대를 도입하려 하는데, 한화디펜스는 K-21을 토대로 한 ‘레드백’ 장갑차를 내세워 사실상 결승전에 진출했다. 맞수는 독일 라인메탈의 링스 장갑차. 라인메탈은 호주의 이번 자주포 수주전에서 판저를 내놨다 한화디펜스 K-9에 패했다. 이 사업을 수주할 경우 한화디펜스는 5조 원 수익이 기대된다. 또한 50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미국 차기 장갑차 사업에도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다. 변수는 라인메탈 측 반격이다. 자주포 수주전 패배를 만회하고자 한화디펜스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도 있다.

K-9 수출 계약은 문재인 대통령의 호주 국빈 방문과 때를 같이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생색내기’가 발견된다. 이명박 정부는 방산 수출에 큰 관심을 보였다. 살벌할 만큼 원가 절감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명박 정부가 끝난 후 문 대통령이 속한 현 여권은 이를 비판했다. ‘4대강 개발’ ‘자원외교’ ‘방위산업’을 비리 덩어리로 규정해 ‘사자방’을 외쳤다. 한국에서 사자방에 대한 아우성이 요란할 때 K-9 호주 수출이 추진됐다. 이윽고 올해 9월 3일 한화디펜스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니, K-9 호주 수출은 ‘떼어놓은 당상’이었다. 다 차려놓은 밥상 앞에 문재인 정부가 앉아 숟가락을 들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천궁-2 대공미사일 양산도 반대했다. 그러한 천궁-2가 최근 UAE에 수출됐다.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는 누구도 사자방을 거론하지 않는다.

호주는 미국, 일본, 인도와 함께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 팽창에 반대하는 쿼드(Quad) 참여국이다. 최근 요소수 부족 사태는 호주와 중국의 대립이 단초였다. 중국이 호주에 무역제재를 가하자 호주는 석탄 수출 제한 조치로 대응했다. 요소수는 석탄에서 추출되는데, 석탄 부족으로 난방조차 어려워지자 중국은 요소수 추출을 금지했다. 그 결과 한국이 심각한 요소수 부족 사태를 겪은 것. 호주는 중국을 견제하고자 한 발자국 더 나아가고 있다. 미국, 영국과 오커스(AUKUS)를 맺고 공격 원자력잠수함(원잠)을 건조하고자 한다. 호주 공격원잠은 핵무기를 탑재한 중국 전략원잠 추적이 주된 임무가 될 것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렸다”


12월 13일 호주를 국빈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왼쪽)이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호주는 미국의 베이징동계올림픽 보이콧에도 동참했다. 내년 2월 중국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 이러한 호주를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은 상대국 체면을 어느 정도 세워줘야 하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마이웨이’를 고수했다.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후 “베이징동계올림픽의 외교 보이콧을 검토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 그래야만 중국 협조 속 북한과 종전선언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를 향한 호주 측 반응은 싸늘해졌다.

방산업계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이 호주에 도와주려고 간 것인지, 방해하려고 간 것인지 모르겠다” “다 된 밥에 재 뿌렸다. 레드백 수출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호주에서 굳이 올림픽 외교 보이콧 불참을 천명한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명분 아닌 실용을 앞세운 정상외교가 절실하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319호에 실렸습니다]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