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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칼럼]“경제는 과학 아닌 정치”라는 이재명, 터키를 보라

입력 | 2021-12-20 03:00:00

“경제는 정치”… 독단과 포퓰리즘의 싹
터키가 보여주는 포퓰리즘의 末路
‘소주성’ ‘文 부동산 정책’도 닮은꼴
경제 실패 안 하려면 정치논리와 선 그어야



천광암 논설실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7일 서울대에서 한 강연에서 “경제는 과학이 아닌 정치”라고 말했다. 이 후보 말을 따르자면, 지금까지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89명의 수상자들은 이 상을 반납하는 게 옳을 것 같다.

통상 노벨 경제학상이라 불리는 이 상의 공식적인 영문 명칭은 ‘Sveriges Riksbank Prize in Economic Sciences in Memory of Alfred Nobel’, 약칭은 ‘Nobel Memorial Prize in Economic Sciences’다. 어느 경우든 ‘Economics(경제학)’가 아닌 ‘Economic Sciences(경제과학)’라는 단어를 쓴다. 당연히 과학적인 방법론을 사용해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연구 성과를 낸 학자들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간다. 경제가 과학이 아니라고 한다면 이 상의 53년 역사가 통째로 부정당하는 셈이다.

이 후보는 이날 강연에서 “경제가 과학이 아니라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엄밀한 의미의 과학이란 이론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일견 그럴싸하지만 사실은 황당한 주장이다. 자연과학의 최첨단에 서 있는 물리학 분야에서조차도 물질의 근원이나 우주의 실체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가설이 있을 뿐이다. 절대적인 진리에는 이르지 못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리’는 과학이 아니라 종교의 영역이다.

이 후보가 경제를 과학의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은 ‘경제는 해석과 의견의 영역’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 기본금융 국토보유세(토지배당) 등, 많은 경제학자들로부터 경제원리에 배치되거나 무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포퓰리즘 공약들을 강행하기 위한 ‘자락 깔기’의 의도도 엿보인다. 어차피 의견과 해석의 영역인 만큼 경제논리를 앞세운 어지간한 비판이나 반대는 개의치 않겠다는 선언일 수 있다.

‘경제는 과학이 아닌 정치’라는 발상이 위험한 이유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출간 이후 약 250년간 경제학이 이룩해낸 객관적인 연구 성과들을 부정하고, 정치 지도자의 독단이나 포퓰리즘에 경제 운영의 키를 내어주기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통치하는 터키가 비근한 사례다.

2003년부터 11년간 총리를 지낸 에르도안은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17년 개헌을 통해 권력 구조를 임기 5년에 중임이 가능한 제왕적 대통령제로 바꿨다. 2018년 대통령 연임에 성공한 그는 강력한 독재적 리더십을 바탕으로 ‘경제논리’와 정반대된 정책을 국가경제가 결딴나건 말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중이다.

에르도안의 경제정책은 ‘높은 금리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라는 ‘외골수’적 믿음에서 출발한다. 물가가 불안할 때는 금리를 올리는 것이 경제학의 보편적 상식이지만 에르도안은 이런 경제학자들의 주장은 음모론이라고 일축한다. 그는 금리 인하 정책에 반대하는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을 잇달아 경질하면서 9월 이후 4개월 연속 기준금리를 낮추도록 했다. 그 바람에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고, 터키 리라화의 가치는 연초에 비해 50% 이상 폭락했다.

급락한 리라화 가치는 외국에서 수입하는 원재료와 수입품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서민 생계와 밀접한 주택 임차료와 식료품 가격도 예외가 아니다. 12월 첫째 주 밀가루 가격은 11월 마지막 주에 비해 2배 가까이 폭등했다. 배고픈 터키 국민들의 원성은 하루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한 에르도안 정권의 답은 ‘적게 먹으라’이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집권여당의 한 유력 의원은 “정상적인 환경에서 우리가 한 달에 고기를 1∼2kg씩 먹었다면 앞으로 0.5kg만 먹자. 우리가 토마토를 2kg씩 샀다면 앞으로는 2개만 사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경제는 과학이 아니라 정치’라는 논리가 향하는 종착역의 풍경이다.

굳이 터키의 사례를 인용할 필요도 없겠다. 문재인 정부가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나 ‘공급 없는, 반쪽짜리 부동산정책’도 에르도안의 폭주와 오십보백보다. 이 후보는 최근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를 대신 사과하는 등 차별화 행보에 열심이다. 표를 의식한 일회용 쇼가 아니라면, ‘경제는 정치’라는 위험천만한 발상부터 버려야 한다. 경제는 과학이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