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사 시험은 죽었다’ ‘5060 국세청 공무원을 위한 몰아주기다.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지난주 서울 동대문구 한국산업인력공단, 세종시에 있는 국세청과 기획재정부 앞에 이런 문구가 적힌 근조 화환들이 놓였다. 세무사 시험 출제 과정에서 공정성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생각하는 수험생들이 항의차 보낸 것이다.
▷발단은 9월 4일 치러진 올해 세무사 2차 시험 중 ‘세법학 1부’ 과목에 출제된 상속·증여세 관련 20점짜리 서술형 문제였다. 시험을 주관한 산업인력공단 측이 “난이도 조절에 실패했다”고 인정할 정도로 어려워 응시자의 82%가 ‘과락’인 40점 미만의 점수를 받았다. 다른 과목 과락 비율 15∼46%보다 현저히 높다. 세무사 시험은 세법학 1, 2부, 회계학 1, 2부 등 네 과목에서 100점 만점에 평균 60점을 넘기면 합격이지만 한 과목만 과락이 돼도 탈락이다.
▷2차 시험 응시자 4597명 중 706명이 합격하고 3891명이 떨어졌는데 세법학 1부에서 과락을 받은 3200여 명 중 다수가 탈락했다. 이들의 분노에 불을 붙인 건 세법학이 세무 공무원 출신 지원자들에게는 면제되는 과목이란 점이다. 국세청, 기획재정부 세제실 등에서 20년 넘게 세무를 담당한 공무원들은 전문성을 인정받아 세법학 두 과목을 빼고 회계학 두 과목만 시험을 치른다. 결과적으로 5년간 한 해 8∼35명이던 20년 이상 공무원 출신 합격자가 올해 151명으로 급증하자 세법학 탓에 떨어진 청년지원자들의 분노가 세대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생명과학 문항 출제오류에 이어 세무사, 교사임용 시험 등 정부나 정부 대행기관이 주관한 시험에서 잇따라 문제가 발생하면서 국가시험의 신뢰성은 크게 훼손됐다. 청년들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풍요와 성장의 시대를 살아온 부모 세대가 바로 자기 앞에서 문을 쾅 닫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공정과 형평에 그 어느 때보다도 민감해진 청년들의 눈높이를 못 따라잡는 허술한 국가시험 관리 체계는 서둘러 손봐야 한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