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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호가 수천만원 낮춰도 매수 실종… 관망속 거래절벽 심화

입력 | 2021-12-20 03:00:00

서울 아파트 ‘팔자’ 2년6개월만에 최고
보유세-대출이자 부담 ‘팔자’ 늘고, 집값 주춤-대출규제에 ‘사자’ 줄어
매매수급지수 2019년 6월이후 최저… 매수세 꽁꽁… 실제 거래는 절벽
“대선뒤 세제 바뀔것” 관망 조짐도




서울 주택 매매시장에서 아파트를 팔려는 사람의 비중이 2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집주인 가운데 보유세와 대출이자 부담에 ‘버티기’를 포기하고 아파트를 처분하려는 의사를 보인 사람이 급증한 것이다. 반대로 같은 기간 아파트 매수 비중은 급감하면서 ‘거래절벽’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9일 KB부동산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수급지수는 이달 13일 기준 51.8로 전주(57.4)보다 5.6포인트 하락했다. 이 같은 수급지수는 2019년 6월 둘째 주(46.9)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이 지수가 하락할수록 매수세인 ‘사자’ 비중이 줄어드는 반면 매도세인 ‘팔자’ 비중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매매수급지수는 8월 셋째 주만 해도 정점인 112.3까지 올랐지만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10월 첫째 주 100 밑으로 떨어진 뒤 줄곧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아파트 매도세가 늘면서 시장이 전반적으로 ‘매수자 우위’ 분위기로 돌아선 건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정책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올 8월 중순 0.5%였던 기준금리는 현재 1%로 올랐다. 10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강화방안’에 따라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을 줄이거나 일시 중단하면서 빚내서 집을 사기가 전보다 어려워졌다. 여기다 최근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집을 사려던 사람들이 더 이상 ‘추격 매수’를 하지 않고 관망세로 돌아섰다.

반면 금리 인상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과 보유세 부담이 급증한 집주인들은 가격이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전에 집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 다만 내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따라 부동산정책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고 일단 관망하려는 조짐도 나타난다.

매도 희망이 늘었지만 급매물이 많지 않은 데다 매수세가 얼어붙어 있다 보니 실거래 시장은 잠잠한 편이다.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건수는 올 1월만 해도 5800건에 육박했지만 9월 3000건 아래로 줄어든 뒤 지난달에는 1233건(잠정)에 머물렀다. 일선 중개업소는 매도 호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매수자들이 원하는 가격대는 그보다 낮아 실제 매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되는 내년 대선까지는 거래절벽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아파트 ‘팔자’ 2년반만에 최고

#1. 서울 강남구의 재건축 단지인 A아파트. 이 단지의 매물은 9월 말만 해도 2채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52채에 이른다. 11월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고 집을 처분하려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일부 집주인은 매도를 수월하게 하기 위해 기존 세입자가 나간 후 빈집으로 놓아둔 곳도 있다”고 귀띔했다.

#2. 서울 노원구 상계동의 B아파트에서도 매물은 늘었다. 올 1분기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매수세가 몰릴 때는 거래가 금방 이뤄져 평균 매물 건수가 20∼30채 정도였다. 최근 매수 심리가 위축되며 지금은 70채가 넘는 매물이 쌓여 있다. 거래는 뜸한 편이다. 일선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우선 시장을 좀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집주인들 호가 낮춘 매물 증가

최근 매물 호가에는 집주인들의 불안감이 반영돼 있다고 일선 중개업소는 본다. 집주인들은 2030의 패닉바잉(공황구매)이 일어났던 상반기(1∼6월)에는 대부분 신고가 수준으로 매물을 내놓았다. 하지만 최근엔 직전 거래 가격보다 호가를 낮춰 내놓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

서울 용산구 C아파트 전용 59m²는 10월 19억 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나타냈다. 하지만 이후 지난달에는 18억9000만 원, 17억8000만 원에 거래됐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달부터 3000만∼5000만 원 호가를 낮추는 집주인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보유세 부담이 늘어난 다주택자들의 고민은 더 커졌다. 서울 2주택자 종부세가 수천만 원에서 1억 원을 넘는 사례가 나오면서 매도를 고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서울 마포구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보유세 부담이 너무 커서 마냥 버티기는 어렵겠다는 집주인이 꽤 있다”며 “양도세가 완화되면 시장에 나올 대기 매물이 꽤 있어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다주택자들이 금방 매물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검토하면서 일부 다주택자는 매도를 보류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와 강동구 등에 아파트 4채를 보유한 김모 씨(41)는 “올해 종부세가 1억 원이 나와 1채 정도 매도를 고민했는데 양도세를 완화할 수도 있다는 소식을 듣고 매도 시기를 미루기로 했다”고 했다.

○ 추격매수 멈추고 관망세…거래절벽 심화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11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잠정치)은 1233건으로 10월(2313건)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올 6∼11월 아파트 거래량은 1만862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만5699건의 41% 수준이다.

하반기 거래절벽이 심화된 건 8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과 올 10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강화방안’에 따른 대출 규제로 매수 심리가 얼어붙었기 때문이다. 일선 거래 현장에선 호가가 수천만 원 떨어진 매물이 나와도 매수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매도자와 매수자 간 눈높이가 전혀 다른 것이다. 서울 관악구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올해 초까지 추격 매수에 나섰던 2030의 매수세가 사라졌다”며 “호가가 5000만 원씩 떨어져서 나오고 있지만 매수자들은 1억 원 이상 떨어진 급매를 원한다”고 했다.

실제 매수자들은 관망세로 돌아선 분위기다. 집값 상승세가 둔화하고, 매물이 쌓이는 상황에서 섣불리 매수하기보다 집값이 본격적으로 떨어지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내년 3월 결혼하는 예비 신부 이모 씨(36)는 “대출 규제도 심하고 사고 싶은 아파트 가격이 너무 올라 우선 전세를 살기로 했다”며 “이제는 집값이 떨어질 때가 됐다고 본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 거래가 많이 이뤄지기 힘든 것으로 본다. 양도세 중과를 완화하면 시장에 매물이 풀리면서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대선 주자들이 공약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며 “적어도 대선까지는 매수자나 매도자 모두 관망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