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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인 목표 설정을 두려워 말라[동아광장/이성주]

입력 | 2021-12-21 03:00:00

실패에 인색한 한국의 성공 지향 문화
어떤 프로젝트라도 격려하는 글로벌 기업
2.8번 도전해 성공한 실리콘밸리 창업자
혁신하려면 실패의 가치부터 알아야



이성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


2021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직의 인사고과 평가도 끝났을 것이고,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성적도 통지됐다. 지금은 아마 우리가 1년 중 가장 많은 성공을, 그리고 실패를 겪고 있는 시점일 것이다. 사실 성공 못지않은 실패의 가치를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실패는 배움을 가능하게 해 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실패의 가치를 알리고자 조직심리학자인 새뮤얼 웨스트는 실패박물관을 설립했다. 2012년에는 세계 실패의 날이 지정됐고, 2018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행정안전부와 중소벤처기업부가 매년 실패박람회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나 실패의 가치를 강조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아직 실패에 인색하다고 느껴진다.

사실 우리나라의 성공지향적인 문화는 지금의 고도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보유하고 있는 자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공 확률이 높은 분야를 전략적으로 선택하고 효율적인 연구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글로벌 선진기업들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연구원들이 자유롭게 제안하고 추진할 여유가 있다. 3M에서는 연구원들의 시간 중 15%를, 구글에서는 20%를, IBM 리서치에서는 무려 50%를 원하는 프로젝트에 할애할 수 있도록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기업들에서는 그 어떤 프로젝트를 제안해도 격려해 주며 실패에 대해 사람을 비난하지 않는다. 연구원들이 모두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라 전제하기 때문에 실패의 원인을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서 찾는 것이다. 실패 후에도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을 이야기하기에 실패를 논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우리나라는 아직 사회 구성원 간 신뢰와 존중, 협력을 의미하는 사회적 자본 수준이 낮다. 2021년 영국의 싱크탱크인 레가툼 연구소가 공개한 ‘세계 번영지수 2021’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 수준은 세계 167개국 중 147위이다. 이에 연구원들을 믿고 실패 경험이 축적되어 성공을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비교적 단기평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향후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는 문화가 절실하다. 혁신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효율적인 연구개발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혁신조사 데이터를 활용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혁신에 있어서의 실패는 시장 최초의 제품을 출시할 가능성을 높여준다.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제품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럼에도 꾸준한 투자가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창업자들 또한 평균 2.8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단기에 만들기는 쉽지 않기에 무엇부터 할지 하나씩 고민해 보아야 한다.

첫째, 무엇보다 혁신에 있어 도전적인 목표 설정을 강조하고 이를 고려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구글에서는 목표를 세우고 그 달성 과정을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OKR(목표 핵심 결과지표)라는 경영도구를 활용한다. 이 도구의 핵심은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달성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주요 결과를 정의하는 것이다. 그런데 연구원들이 OKR에서 설정한 목표를 100% 달성할 경우 칭찬을 받는 게 아니다. 오히려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연히 OKR의 달성도와 연구원들의 인사평가는 분리되어 있다. 제시한 연구목표의 달성 수준이 성과평가지표로 설정되어 있는 한,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기가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둘째, 도전적 혁신의 위험을 분산하고 결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한 기업의 대표가 대학과의 공동연구를 통해 가장 실패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를 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산학협력 과제는 대학 연구 인력을 활용하여 기업이 다양한 혁신을 시도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기업 간 협력은 비교적 빠르고 값싸게 실패를 경험하게 한다. 내외부적으로 실패 경험을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GE는 실패 사례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여 조직의 자산으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실패 사례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실패의 가치를 인정하는 시작이다.

2021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올해 얼마나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했는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실패를 했고 그로부터 배웠는가? 이는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고자 하는, 실패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성주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