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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유재동]뉴욕의 두 번째 크리스마스 악몽

입력 | 2021-12-21 03:00:00

오미크론 확산에 또 절망에 빠진 뉴요커들
“포기 말자. 우린 이긴다” 파우치의 호소



유재동 뉴욕 특파원


‘SANTA IS HERE!’

얼마 전 찾아간 뉴욕 맨해튼 34번가의 메이시스 백화점 8층. ‘여기 산타가 왔다’는 광고판 밑에선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 성탄절 영화의 대표작 ‘34번가의 기적’의 배경이 된 이곳은 매년 연말이 되면 수십만의 뉴요커들이 산타클로스를 ‘알현’하기 위해 찾는 명소다. 작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문을 닫아서 그런지 올해는 예약 손님들이 꽉 차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런데 이곳에서 만난 직원들은 산타를 만나는 방식이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고 했다. 아이들은 이제 예전처럼 산타에게 귓속말로 소원을 말하거나 무릎에 눕는 친밀한 행동을 할 수 없다. 또 산타와 아이들 사이에는 큰 책상이 가로놓여 있고 모두가 마스크를 써야 했다. 올해는 아이들이 다시 산타의 품에 안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고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일부 언론은 ‘34번가의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며 씁쓸해한다. 요즘 코로나19 하루 확진자 수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뉴욕의 안타까운 풍경이다.

“이 사태는 언제쯤 끝날까요.” 캐시 호컬 뉴욕 주지사의 16일 언론 브리핑. 모두가 답을 알고 싶어 하지만 누구도 알 수 없는 질문이 불쑥 튀어나왔다. 호컬 주지사는 숨을 쉬더니, 손을 맞잡아 비비고, 또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며 뜸을 들이다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미크론도 몇 달 전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죠. 지금 이 세상에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저도 그렇고요.” 그날 주지사의 반응에선 요즘 뉴요커들이 느끼는 피로와 무력감이 한가득 묻어났다.

시민들은 시내 곳곳의 검사소에서 두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리면서 연신 한숨을 내쉰다. “도대체 언제쯤에나 끝이 날까”, “그렇게 참고 견뎠는데 왜 달라진 게 없나” 하는 답답함이다. 작년 이맘때쯤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나가서 시민들의 새해 소망을 취재한 적이 있다. 당시 ‘소망의 벽’에 게시된 종이쪽지들에는 “새해에는 건강을 바란다”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때만 해도 모두가 2021년은 좀 다를 줄 알았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소망을 적어내고 있다고 한다.

뉴욕 시민들에게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이번이 두 번째다. 식당과 학교, 기업, 공연장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바이러스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많은 곳이 문을 닫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올해는 그나마 작년보다 거리에 사람도 더 많이 보이고 크리스마스트리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지만 시민들의 표정에는 불안감이 가득하다. 가족과 지인을 먼저 보낸 트라우마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겹치면서 ‘마음의 병’까지 확산되고 있다. 요즘 미국의 심리상담사들은 시골에서조차 예약이 꽉 차고 환자들을 돌려보내야 하는 실정이다.

뉴요커들은 과연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1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 특히 백신이라는 무기를 갖고도 별로 나아진 게 없다는 생각에 이들은 자신감을 잃은 상태다. 그러나 미국의 ‘방역 사령탑’인 앤서니 파우치는 연일 시민들에게 계속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지금은 모든 전투에서 패하던 제2차 세계대전 초기와 비슷하다.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린 이길 것이다.” 요즘은 미국뿐 아니라 모든 나라가 전쟁이다. 너무나 힘들고 지치지만 우리에겐 어떻게든 이겨내는 길밖에 없다.



유재동 뉴욕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