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 전 주일 미국대사(64)가 주호주 대사로 지명됐다는 소식에 호주 소셜미디어는 하루 종일 환영 메시지로 와글와글했습니다.
호주의 대표 신문인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캐롤라인 케네디는 이상적인(ideal) 대사”라며 치켜세웠습니다. 조 하키 전 주미 호주대사는 “호주에 대한 미국의 찬사(compliment)”라고 했습니다. 호주의 유력 매체 브리즈번타임스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대사 임명이 늦어지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중요한 나라에 자신이 신뢰하는 인물을 보낸다는 것”이라며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2008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조 바이든 대통령(오른쪽)과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딸 캐롤라인 케네디(왼쪽).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그녀를 주호주 미국대사에 지명했다. 더선
이름 하나로 아이콘이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캐롤라인 케네디가 그런 사람입니다. 케네디의 후광이 캐롤라인이라는 이름에 녹아있습니다. 대사 지명을 계기로 호주 인기팝송 차트에 소환 조짐을 보이고 있는 닐 다이아몬드의 1969년 노래 ‘스윗 캐롤라인’은 후렴구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사랑스런 캐롤라인, 옛날에는 좋더라도 이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았고, 내게는 이렇게 멋진 날들이 절대 없을 거라고 믿었어요.”
이 곡에 얽힌 뒷얘기를 하자면 주인공이 캐롤라인 케네디라는 소문이 공공연히 돌다가 2007년 다이아몬드가 방송 인터뷰에서 “말을 타고 있는 어린 캐롤라인의 잡지 표지 사진을 보고 노래를 지었다”고 밝히면서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다이아몬드는 캐롤라인 케네디의 50세 생일 축하 파티에서 이 노래를 직접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사 내용에 함축된 성적(性的) 메시지 때문에 논란이 일자 2014년 다이아몬드는 “사실 아내인 마샤를 모델로 한 노래이며, 멜로디 상으로 세 개의 음절이 필요해 ‘캐-롤-라인’으로 했다”고 정정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미국 가수 닐 다이아몬드가 1969년 발표한 곡 ‘스윗 캐롤라인’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캐롤라인 케네디가 어린 시절 말을 타는 모습. 보스턴헤럴드
‘스윗 캐롤라인’ 속 캐롤라인의 정체는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유일한 직계 가족인 캐롤라인 케네디에 대한 미국인들의 애정과 관심입니다. 지난해 대선 캠페인 초반에 저조한 인기로 고민하던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는 캐롤라인 케네디의 지지를 얻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았습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 후보는 당시 보잉사 이사로 있던 그녀의 지지 성명을 얻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펼쳤고, 캐롤라인 케네디는 보스턴글로브 기고(2020년 2월)를 통해 공식 지지를 밝혔습니다,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백악관 집무실에서 놀고 있는 캐롤라인 케네디. 데일리메일
“그(바이든 후보)는 미국의 낙관주의와 관대함을 대변한다. 그는 언제나 미국이 동맹국들과 함께 할 것이며,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왔다. 그는 상대국에게 고언을 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고언은 사적인 채널을 통해 기술적으로, 그리고 상대에 존경심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이 기고는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인들의 향수를 자극하는 케네디 전 대통령 시대의 글로벌 리더십의 비전이 고스란히 배어있었기 때문입니다. 판에 박힌 정치인 지지 성명이 아니라 자신보다 15세나 많은 정치 대선배인 바이든 후보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본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언어들이 호평을 받았습니다. 캐롤라인 케네디의 바이든 지지에 열 받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후보는 그녀의 주일 미국대사 경력을 깎아내리며 “일본은 케네디라면 사족을 못 쓴다”고 조롱했습니다.
2013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외교 경력이 없는 그녀를 주일대사로 임명했을 때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캐롤라인 케네디를 가리켜 “일본 전문가도 아니요, 국제문제 전문가도 아니다. 외교관 경력은 물론 공직을 가져본 경험조차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2017년 그녀가 주일대사에서 물러났을 때 평가는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하와이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인 동서문화센터는 “양국 외교 관계를 밀착시키고 일본에서 미국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평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녀의 이임을 아쉬워하며 ‘대사관의 영역을 벗어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대사’라는 제목의 장문의 기사를 올렸습니다.
주일 미국대사 시절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행사에 참석한 캐롤라인 케네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캐롤라인 케네디는 대사 경력은 짧지만 미국 대통령과 직접 소통하고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자산입니다. 흔히 외교가에서는 “대통령과 직통전화 라인(direct line)을 가진 대사”라고 부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캐롤라인 케네디 대사의 발언은 외교적으로 최고 결정권을 가진 것으로 간주됩니다. 주일대사 시절부터 그녀를 알고 지내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다른 나라들은 대사가 ‘노(No)’라고 해도 그 윗선(대통령)을 설득하면 ‘예스(Yes)’로 바뀔 수 있는데 반해 캐롤라인 케네디가 ‘노’라고 하면 진짜 ‘노’더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막강한 발언권으로 2016년 오바마 전 대통령을 설득해 미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히로시마평화공원 방문을 성사시켰습니다.
전문가들은 캐롤라인 케네디의 강점에 대해 케네디이기 때문에 받는 스포트라이트를 긍정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함이라고 분석합니다. 다른 케네디 후손들이 각종 스캔들에 휘말려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과 달리 모범적인 사생활을 유지해왔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꼽힙니다. 캐롤라인 케네디 다음으로 유명한 케네디가 후손인 로버트 케네디 주니어 변호사는 최근 코로나19 백신 반대 운동가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다가 소셜미디어 계정이 차단됐습니다.
한국은 캐롤라인 케네디라는 ‘대어(大魚)’를 낚은 호주를 복잡한 심경으로 바라볼 뿐입니다. 이웃국가 일본 중국에는 이미 미국대사가 지명된 것과는 달리 주한 미대사는 11개월째 공석입니다. NBC방송은 미 의회 관계자를 인용해 한국인들이 아직 주한 미대사가 임명되지 않은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전례를 볼 때 한국에는 캐롤라인 케네디 같은 셀러브리티급 미대사가 올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스타 정치인이든, 실무형 외교관이든 미 대사가 없다는 것은 임기 말 외교 과제가 산적한 우리 정부로서는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 외교가에서 나오는 말대로 한반도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면 한국 외교당국은 어떤 대응책을 갖고 있는지 답답할 따름입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