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형준 사회부 차장
예전 법조 출입기자들은 검찰이 보낸 공소장이 법원 영장계에 도착하면 다음 날 아침 법원에서 공소장을 열람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가 강화되고 본인 사건 공개에 대한 민원인의 항의가 잇따르자 법원은 2017년 9월 법조 출입기자단에 대한 공소장 제공을 금지했다.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관행적으로 공개됐던 정보가 수면 아래로 들어간 만큼 언론의 권력 감시 기능이 약화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하지만 인터넷과 카카오톡 등 메신저가 보편화되면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우려도 커진 만큼 기자단에서도 법원의 방침에 저항할 도리가 없었다.
이후 언론사들은 첫 재판이 이뤄진 뒤에야 법원으로부터 공소 요지를 제공받거나 국회를 통해 공소장을 입수하는 등 기존에 비해 취재에 어려움이 커졌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언론의 정보접근권은 점차 제한돼 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수사 이후 법무부는 2019년 12월부터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시행하며 전문공보관제 도입과 기자의 검사실 출입 금지 등을 시행했다.
이후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2월 “언론에 공소장 전문이 공개되어 온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며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이 침해된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이에 추 전 장관은 국회법을 위반하면서까지 국회가 요구한 ‘울산시장 선거공작 사건’ 공소장을 제출하지 않았고 동아일보는 해당 공소장 전문을 공개하며 문제 제기를 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8일 “첫 재판 이전 공소장 공개는 안 된다. (공소장 공개가) 죄가 된다, 안 된다를 떠나서 원칙의 문제”라고 했다. ‘형사사건 공개 금지 등에 관한 규정’에 담긴 공소 제기 전 공개 금지 등을 지칭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박 장관의 과거 언행과 차이가 있다. 박 장관은 2016년 국정농단 특검법을 발의할 당시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피의사실 외의 수사 과정을 언론에 브리핑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도 ‘피의사실을 공소 제기 전에 공표한 경우’에 한해 처벌한다. 공소 제기 후 공소장 공개에 대해선 처벌할 수 없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 비밀 누설에 해당되지 않던 게 몇 년 뒤 같은 죄목으로 처벌받는다면 법적 안정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는 것인가.
첫 재판 이전 공소장 공개 금지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면 장관 뜻이 반영된 법무부 훈령으로 만들 게 아니다. 국민에게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가 민의 수렴을 거쳐 관련법을 제정 및 개정해야 할 것이다.
황형준 사회부 차장 constant2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