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TBC 주말극 ‘설강화’ 역사 왜곡 논란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시청자뿐만 아니라 작가, 역사학자, 비평가 등 의견도 엇갈리고 있다.
소설가 겸 드라마 작가 소재현은 설강화 논란과 관련 ‘5·18 민주화운동’을 주제로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밝혔다. 21일 인스타그램에 “나에게도 많은 분들이 5.18 역사를 집필할 것을 권유했다”며 “나에게 작가란 그랬다. 작가 펜은 늘 정의로워야 한다. 약자를 보호하고 권력에겐 칼이 돼야 한다. 진실을 말하고 지켜야 한다. 그 안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가 돼야 한다. 이건 신념이 아닌 대중이란 신앙에게 지켜야 할 계명”이라고 썼다.
“그 시절을 감히 내 머리와 가슴만으로 쓴다는 사실이 버겁고 대중을 향한 배신과 같이 느껴졌다. 다른 누군가가 이슈와 자극적 소재, 인기, 시청률, 관심을 위해 집필한다고 해도 나만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며 “그냥 그랬다. 적어도… 나만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모든 작가의 펜이 상상과 허구라는 명분으로 그리한다 한들… 나의 펜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창작자들에게는 역사적 사실을 날조할 자유가 있지만, 그 날조에 사회·문화적 책임을 질 의무도 있다”며 “조두순이나 유영철을 미화하고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패륜적 창작물이 아직 안 나온 것도, 이런 생각에 대한 사회적 응징 기능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피해자들이 생존해 있는 역사적 사실을 증거없이 날조할 권리가 창작자에게 있다면, 그들을 응징할 권리는 시민들에게 있다. 응징 정도가 유사한 창작물 범람 가능성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설강화의 역사왜곡 의도를 발견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올해 초 역사 왜곡 논란으로 방송 2회 만에 종방한 SBS TV 드라마 ‘조선구마사’도 옹호한 인물이다. 기 교수는 21일 페이스북에 “설강화 2회까지 시청한 바로 일각에서 제기하는 안기부 미화나 민주화운동 폄훼 등 의도성은 발견하기 어렵다. 안기부 미화 의도성을 의심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는 건 남자 주인공(정해인) 직업이 무려 간첩이라는 것”이라며 “1980년대 이런 설정의 드라마를 찍었다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안기부에 끌려갔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드라마에서 운동권은 시대 분위기를 내는 소재 정도로 가볍게 사용되고 있지만, 운동권을 비웃거나 폄훼하진 않는다. 안기부가 악명만큼 사악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폭력적이고 부정적 느낌을 주는 집단 정도로는 묘사된다”며 “설강화에 민주화운동을 폄훼하기 위한 음험한 의도나 역사 왜곡 혐의를 들이대는 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고 해도 상대를 악마화 해 존재를 말살하려 하지 않았으면 한다. 욕을 해도 비평 영역에서 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비평가 진중권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며 누구도 시청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된다는 주의다. 21일 페이스북에 “대체 이게 뭐 하는 짓들인지”라며 “한쪽에서는 민주화운동을 폄훼했다고 난리를 치고, 다른 쪽에서는 간첩을 미화했다고 국보법으로 고발을 하고. 편은 다르지만 멘털리티는 동일한 사람들. 둘 다 열린 사회의 적”이라고 비판했다.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임수호’(정해인)와 위기 속에서 그를 감추고 치료해준 여대생 ‘은영로’(지수)의 로맨스다. ‘SKY 캐슬’(2018~2019) 유현미 작가·조현탁 PD가 뭉쳤다. 지난 3월 원제인 ‘이대기숙사’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가 온라인상에 유출, 민주화운동 폄훼·안기부 직원 캐릭터 미화 의혹을 받았다. 당시 JTBC는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폄훼하고 안기부와 간첩을 미화하는 드라마가 결코 아니”라고 해명했다.
지난 18일 첫 방송 후에도 역사 왜곡 논란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영로가 간첩인 줄 모르고 시위하다 쫓기는 것으로 착각해 수호를 도와주는 장면 등이 유출된 시놉시스와 동일하다는 의견이 빗발쳤다. JTBC는 21일 “설강화는 권력자들에게 이용 당하고 희생 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며 “설강화에는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