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지면서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을 전공한 대졸자들이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경기가 불황일수록 이런 경향은 심화된다. 취준생 입장에서는 찬밥 더운밥을 가릴 여유가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016년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 중 전공과 맞지 않는 직업을 가진 근로자 비율이 50.1%에 이른다고 한다. 조사 대상 29개 국가 중에서 인도네시아(54.6%) 다음으로 2위다. OECD 평균 39.6%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은 지금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12월 말 시작되는 대입 정시모집은 자신의 수능 점수만으로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는 치열한 경쟁이다. 올해는 생명과학Ⅱ 출제 오류로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됐다. 많은 수험생들이 부딪히는 고민 중의 하나가 전공을 우선시해야 할지, 학교를 우선시해야 할지의 선택이다.
▷전공 불일치는 불황기에 대졸 취업자의 임금을 낮추는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 한국은행 최영준 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불황기였던 2009년 전공 불일치 근로자들은 전공이 일치하는 근로자보다 임금을 평균 5.5%가량 적게 받았다. 한번 적게 받은 임금은 단기에 회복되지 않고 장기간 지속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황기였던 1998년과 2005년, 2009년에 전공 불일치 근로자가 늘어났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졸업 이후의 경제적 삶을 생각한다면 학교보다는 전공에 무게를 두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2020, 2021년에도 전공 불일치 근로자가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 OECD는 한국이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사회적 자원의 낭비를 부르는 ‘전공 불일치’ 비율을 낮춰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서는 초중고의 직업교육을 강화하고, 직종 간 이동이 보다 자유롭도록 노동시장을 유연화해야 한다. 또한 미래 산업 트렌드에 맞춰 대학의 학과와 정원도 더 유연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