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14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인근의 신도시 ‘셰이크자이드시티’ 입구에 아랍에미리트(UAE)의 초대 대통령인 셰이크 자이드(1918∼2004)의 동상이 서 있다. 1995년 UAE의 투자금으로 건설된 이 도시는 아라비아반도의 가난한 어업국이었던 UAE가 건국 50년 만에 세계적 부국으로 거듭났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꼽힌다. 카이로=황성호 특파원 hsh0330@donga.com
황성호 카이로 특파원
《14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인근의 신도시 ‘셰이크자이드시티’를 찾았다. 도시 입구에는 ‘아랍에미리트(UAE)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UAE 초대 대통령 겸 전 아부다비 군주 셰이크 자이드(1918∼2004)의 동상이 있었다. 이 도시가 UAE 자본으로 만들어졌기에 그의 이름이 붙었다. 풍부한 원유와 천연가스를 보유한 UAE는 2020년 국제통화기금(IMF)이 구매력평가지수(PPP)로 측정한 1인당 국민소득이 세계 7위인 7만441달러(약 8453만 원)에 달하는 부국이다. 1995년 UAE의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펀드는 이 신도시 건설에 7억3500만 디르함(약 2386억 원)을 투자했다. 이집트 정부 또한 답례의 표시로 셰이크 자이드의 이름을 붙였다.》
이집트 사람들은 나일강이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이달 2일로 건국 50년을 맞은 신생 국가 UAE의 돈으로 신도시를 지을 만큼 두 나라의 경제 격차가 상당하다. 특히 UAE는 보수적이고 변화에 다소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 이슬람권에서 보기 드문 개혁개방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우선 내년 1월부터 전 세계 최초로 주 4.5일 근무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특히 이슬람력의 주말인 금요일과 토요일을 쉬지 않고 공공분야에서는 서구처럼 토요일과 일요일을 휴일로 삼겠다고 밝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해적 소굴’서 ‘사막의 기적’으로
UAE는 1971년 12월 2일 영국에서 독립한 아라비아반도 동부의 토후국들이 연합해서 만들었다. 대통령직은 7개 토후국 중 가장 힘이 강한 아부다비의 나하얀 가문이, 부통령 겸 총리는 두바이의 막툼 가문이 각각 세습한다. 아지만, 푸자이라, 샤르자, 라스 알카이마, 움알쿠와인 등 나머지 5개 토후국의 군주 역시 각료직을 나눠 가지며 세습한다.
1958년 아부다비에서 ‘검은 황금’ 원유가 발견되면서 나라의 운명이 바뀌었다. 미국 에너지관리청(EIA) 기준 세계 7위 산유국인 UAE는 풍부한 원유와 천연가스를 바탕으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특히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UAE를 넘어 중동 전체의 물류 및 금융 허브 역할을 하며 ‘사막의 기적’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1985년 중동 최초의 자유무역지대로 만들어 세계 각국 기업과 인재를 유치한 결과다. 이웃 중동 국가와는 달리 UAE에 투자하는 외국인은 현지인 동업자가 없어도 100% 현지 기업을 소유할 수 있다.
건국 50주년 맞아 사회 개혁도
아랍에미리트 건국 50주년 기념일인 2일(현지 시간) 두바이의 한 전시장에서 국기 모양을 머리에 장식한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자신들의 모습을 찍고 있다. 두바이=AP 뉴시스
보수적인 사회 관습을 바꾸는 데도 열심이다. 지난해 술 소비 규제를 완화해 내국인도 자격증 없이 술을 살 수 있게 했다. 미혼 부부의 동거를 처벌하지 않고, 마약 사범에 대한 엄격한 형벌도 완화했다.
이 같은 변화의 정점이 근무제 변화다. UAE가 주 4일도, 5일도 아닌 4.5일을 택한 것은 금요일 오전에 모스크에서 기도를 드리는 이슬람 신자를 위해서다. UAE는 4.5일 근무제를 발표하며 국내 모든 모스크의 금요일 예배 시간을 오전에서 오후 1시 15분 시작으로 바꿨다. 국민들이 금요일 오전에는 일을 하고, 오후엔 모스크에 갈 수 있도록 배려한 셈이다. 이런 대대적인 개혁은 UAE 내부는 물론이고 중동 전체에서도 호평을 받고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지역센터장은 “최근 적지 않은 아랍 젊은이들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라 UAE를 ‘가장 살고 싶은 나라’로 꼽는다”고 전했다.
사우디 견제에 담긴 UAE 야심
13일 나프탈리 베네트 이스라엘 총리 또한 1948년 건국 후 현직 총리 최초로 UAE 땅을 밟았다. 그는 UAE 실권자이자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한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제(60)와 회담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중동 전문가들은 이 같은 행보가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를 넘어 중동의 새로운 맹주가 되려는 UAE의 야심을 보여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UAE와 사우디는 석유의존형 경제구조, 인권탄압 논란 등 비슷한 난제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와하비즘’을 추종하는 세력이 많아 서구식 개혁에 대한 사회 전반의 거부감이 큰 사우디와 달리 UAE는 국민들이 개혁개방의 과실을 이미 맛본 만큼 좀 더 유리한 입지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왕정에 대한 젊은층의 불만을 해소하는 것 또한 난제로 꼽힌다. UAE는 인구 993만 명의 58%가 35세 미만인 젊은 나라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서구 문화에 익숙해진 이들의 개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라도 끊임없는 사회 개혁이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풍부한 원유로 얻은 돈을 국민에게 보조금 형식으로 직접 지급하며 불만을 무마해 왔지만 저유가 등으로 이것이 한계에 부딪힐 것이란 지적이 상당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UAE의 개혁 조치에도 불구하고 세습 왕정 등 정치 체제의 낙후성은 여전하다며 “UAE가 사회적으로 더 자유로워졌지만 이곳에서 정부에 대한 반대 의견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황성호 카이로 특파원 hsh033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