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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아이에게 도움된다면 조부모도 손주 입양 가능”

입력 | 2021-12-23 17:08:00

김명수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에 참석하고 있다. 2021.12.23/뉴스1 © News1


아이에게 이익이 된다면 조부모가 아이를 자녀로 입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입양 허가를 판단할 때는 ‘아이의 복리’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2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A 씨 부부가 “외손자를 아들로 입양 하겠다”며 낸 입양허가 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울산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조부모가 손자녀에 대한 입양허가를 청구하는 경우에도 입양의 요건을 갖추고 입양이 자녀의 복리에 더 부합한다면 입양을 허가할 수 있다”며 “이것이 입양의 의미와 본질에 부합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2012년 개정된 민법 867조는 미성년자를 입양할 경우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전에는 당사자 사이의 입양 합의와 부모의 동의가 있을 경우 신고만으로 입양이 가능했는데, 법원이 입양될 미성년자의 복리를 위해서 양육 상황과 입양 동기 등의 사정을 따져 입양 허가 여부를 판단하도록 한 것이다.

대법원은 “민법 867조의 문언과 개정 취지, 유엔 아동권리협약, 입양특례법 규정 등을 고려하면 가정법원이 미성년자 입양 허가를 판단할 때는 입양이 아이의 복리에 적합한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조부모의 입양이 아이의 복리에 이익이 되는지를 충분히 심리하지 않고 입양을 불허한 원심 판단은 잘못”이라고 했다.

대법원에 따르면 A 씨 부부의 딸 B 씨는 고등학생 때 아이를 임신해 아이의 아버지와 혼인신고를 한 뒤 아들을 출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과 이혼하게 된 B 씨는 아들이 생후 7개월이 됐을 무렵 A 씨 부부에게 아들의 양육을 맡기고 집을 떠났다. 이후 외손자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시기가 되자 A 씨 부부는 “외손자가 우리를 부모로 알고 자라고 있고 아이와 친부모 사이에 교류가 없다”며 법원에 입양 허가를 청구했다. B 씨와 B 씨의 전 남편도 입양에 동의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 부부가 외손자를 입양하면 외조부모가 부모가 되고 B 씨는 어머니이자 누나가 되는 등 가족 내부 질서와 친족관계에 중대한 혼란이 초래된다”며 A 씨 부부의 입양을 불허했다. 1심 재판부는 “지금도 A 씨 부부가 손주를 양육하는 데 제약이 있다고 보기 어렵고, 장래에 아이가 진실을 알게 돼 받을 충격 등을 고려하면 관계를 정확히 알리는 것이 아이에게 이롭다고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했다. 2심 재판부도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하지만 대법원은 “전통적인 가족공동체 질서의 관점에서 친족관계를 변경하는 것이 혼란을 초래하거나 아이의 정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고 단정해서 입양을 불허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입양 허가 여부의 판단은 입양될 아이의 복리에 대한 고려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확인한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조부모 입양에는 특수성이 있는 만큼 이것이 아이의 복리에 미칠 영향에 대한 세심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봤다. 대법원은 △조부모가 단순 양육을 넘어 양친으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 의사가 있는지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이고 영속적으로 양육하고 보호하기 위함인지 △친부모의 재혼이나 국적 취득 등 다른 혜택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등을 판단 기준으로 제시했다.

다수의견에 대해 조재연 민유숙 이동원 대법관은 “조부모가 입양 사실을 숨기는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양친자 관계가 형성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고 향후 자녀의 정체성 혼란을 야기할 우려가 크다”며 A 씨 부부의 입양이 아이의 복리에 적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
박상준 기자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