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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코로나 치료제, 입원-사망 89% 예방…‘제2 타미플루’ 될까

입력 | 2021-12-23 21:12:00


22일(현지 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화이자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먹는 치료제인 ‘팍스로비드’를 긴급 승인하면서 미국 국민들은 빠르면 이번 주말부터 집에서 간편하게 알약을 먹어 코로나19를 치료할 것으로 보인다. 1년 전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1년 만에 코로나19에 대항할 새로운 ‘무기’가 등장한 셈이다.

국내에는 내년 2월경 먹는 치료제 40만4000명분의 일부가 들어올 예정이다. 다만 세계 각국이 저마다 먹는 치료제 확보에 나선 만큼 앞으로 우리 정부의 치료제 확보 역량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 ‘제2의 타미플루’ 기대되는 팍스로비드
먹는 치료제는 환자 개인이 코로나19에 대응할 방법이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승인된 코로나19 치료제는 링거용 또는 주사제밖에 없어서 병원에 입원해야만 투약할 수 있었다. 반면 먹는 치료제는 재택치료 중 알약 형태로 복용할 수 있다. 2009년 신종플루 유행 당시에도 먹는 치료제인 ‘타미플루’가 공급되면서 감염병 확산이 끝난 바 있다.

FDA는 팍스로비드 사용 대상을 12세 이상 코로나19 환자로 정했다. 이들 중 코로나19가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에 속하면 약을 처방받을 수 있다. 여기엔 당뇨나 심장병 등 기저질환을 가진 고령층이 주로 포함되며, 어린이의 경우 몸무게가 최소 40kg을 넘어야 한다. 증상 발현 후 5일 이내에 12시간 간격으로 복용하면 된다.

임상시험 결과 팍스로비드는 환자의 입원 및 사망 확률을 89%까지 줄였다. 임상시험 결과 이 약을 복용한 환자 중 1% 미만이 입원했고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반면 위약을 복용한 집단에서는 6.5%가 입원했고 9명이 사망했다. 전재현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임상연구센터장은 “앞으로 코로나19 진단 직후 치료제 복용을 하면 입원이 줄어들어 병상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이라며 “치료의 기준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화이자는 팍스로비드가 ‘오미크론 변이’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미크론 변이는 스파이크 단백질에 수십 종의 돌연변이가 있어 기존 항체치료제는 효과가 떨어진다. 안광석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먹는 치료제는 바이러스가 세포 안에서 증식하는 것을 차단하는 원리”라며 “그 어떤 변이가 나타나도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재택치료 환자 중심으로 무료로 투약
국내에선 내년 2월경 재택환자 등을 대상으로 먹는 치료제 투약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김옥수 중앙방역대책본부 자원지원팀장은 23일 브리핑에서 “재택환자, 고위험 경증 및 중등증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 등에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택치료 환자는 먹는 치료제 중심, 입원 환자는 기존 항체치료제 중심으로 처방할 예정이다.

내년 초 국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경구용 치료제는 총 40만4000명분이다. 미국 머크의 몰누피라비르 24만2000명분,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7만 명분은 이미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추가 계약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질병관리청은 이날 구체적인 먹는 치료제 선구매 계약 현황에 대해 브리핑할 예정이었으나 당일 갑자기 발표를 연기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당초 23일이면 협상이나 긴급사용승인 문제가 정리가 될 것으로 보았으나, 아직도 진행 중이어서 추후 구체화되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먹는 치료제를 환자들에게 무료로 공급할 예정이다.


● 백신 이어 각국 ‘치료제 확보전’ 가열
먹는 치료제 상용화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각국의 확보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 등으로 올겨울 다시 코로나19 대유행이 우려되면서 나라마다 치료제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달 세계 최초로 몰누피라비르 사용을 승인한 영국은 이 약을 223만 명분 주문했다. 이탈리아도 팍스로비드와 몰누피라비르를 각각 5만 명분씩 구입했다. 일본은 몰누피라비르 160만 명분을 들여올 예정이다.

앞으로는 팍스로비드 위주의 확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먹는 치료제 선두주자였던 머크의 몰누피라비르가 팍스로비드에 비해 효능이 적고 부작용이 많은 사실이 드러난 탓이다. 머크는 당초 몰누피라비르의 입원 사망 예방 효과가 50%라고 밝혔지만, 최종 결과에서는 그 효과가 30%로 낮아졌다. 이 때문에 프랑스는 22일 5만 회분에 이르는 몰누피라비르 사전구매 계약을 취소했다. 국내 방역당국 관계자도 “머크보다 화이자 치료제 확보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팍스로비드는 제조 기간이 9개월에 이르는데다 이미 생산돼 즉시 납품 가능한 물량은 18만 명분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지환 서울시 보라매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문제는 먹는 치료제의 물량 부족”이라며 “팍스로비드 7만 명분조차 한꺼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조금씩 들어올 것으로 보이는 만큼 누구에게 먼저 투여할지 우선순위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