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군 우포늪 인근의 따오기. 날개를 펴자 분홍색 깃털이 보인다.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달 10일 경남 창녕군 이방면 이주호 씨(61) 논에는 베어낸 벼 밑동만 남아 있었다. 논의 가장자리 2m 정도는 벼 밑동도 없이 흙과 물이 드러나 있었다. 물을 빼고 심어둔 마늘 싹이 올라와 푸릇푸릇해진 주변 논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 곳은 이 씨가 따오기들이 먹이를 먹으며 쉬라고 비워 둔 논이다. 사계절 내내 농약을 치지 않는다. 겨울철에도 물을 괴어놓은 채 유지한다.
한국에서 따오기가 사라졌다는 결론을 국제자연보호연맹 등에 보고했다는 내용의 동아일보 1984년 기사. 동아일보 DB
이 씨는 3년 전 따오기 울음소리를 처음 들어봤다. 원래 논이나 하천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따오기는 농약 사용과 남획으로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국내에선 1979년 경기 파주에서 목격된 것이 마지막 야생 개체였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40년 만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온 따오기는 창녕 사람들에게는 ‘선물’ 같은 존재가 됐다.
2008년 중국에서 기증받은 따오기 한 쌍이 전세기를 타고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한 뒤 찍은 기념사진. 동아일보 DB
국내 따오기 복원은 2008년 중국에서 한 쌍을 기증받으며 시작됐다. 이 따오기들은 한국에 들어오는 과정부터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일반 새장보다 크고 흔들림이 적게 제작된 새장에 들어간 상태로 전세기 귀빈석에 앉아 한국에 왔다. 입국한 뒤에는 경남 김해국제공항에서 창녕군까지 특수 무진동차로 이송했다.
중국에서 온 따오기 부부. 수컷 양저우(오른쪽)와 룽팅의 모습. 동아일보 DB
2009년 한국에서 처음 태어난 새끼 따오기. 동아일보 DB
이듬해 두 마리가 알에서 부화했을 때는 경남도가 전국을 대상으로 새끼 따오기 이름을 공모했다. 후보만 530여 개가 접수돼 새끼 따오기들은 ‘따루’와 ‘다미’란 이름을 얻었다. 개체 수가 늘어나면서 2013년에는 유전적 다양성을 늘리기 위해 중국에서 추가로 수컷 두 마리를 기증받기도 했다.
따루와 다미. 동아일보 DB
따오기 야생 방사는 여러 차례 미뤄지다 2019년에서야 이뤄졌다. 방사 예정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조류독감(AI)가 퍼지거나 날씨가 험해지는 등 여건이 맞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따오기 보호의 ‘강도’가 더 세졌다. 2014년 AI가 퍼졌을 때는 우포따오기복원센터 직원들이 설 명절 연휴를 포함해 2주간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합숙했다. AI 전염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2019년 따오기를 창녕 하늘에 날려보는 장면. 한국에서 사라진 지 40년 만에 따오기가 날아오르는 순간이다. 동아일보 DB
야생 방사 전 미꾸라지 먹는 훈련을 하는 따오기들. 동아일보 DB
따오기는 얕은 물가에서 벌레와 미꾸라지 등을 잡아먹는 새다. 이 때문에 강이나 바다가 아닌, 논이나 하천이 최적의 서식지다. 동시에 환경오염에 약하다. 농약을 치는 논은 곤충이나 작은 동물이 없어 따오기가 살 수 없다.
물 속에 부리를 넣어 먹이를 찾는 따오기.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따오기를 위해 창녕 주민들이 나섰다. 주민들은 따오기가 날아가서 쉬고, 먹이도 먹을 수 있는 ‘거점 서식지’로 자신의 논을 내놨다. 논을 거점 서식지로 내 놓으면 제초제와 농약을 일절 쓸 수 없다. 따오기들이 놀 수 있게 논 가장자리를 비워둬야 해 그만큼 심을 수 있는 벼의 양도 줄어든다. 대여료가 지급되지만 가을철 논에 물을 빼고 마늘을 심는 등 부가수익도 포기해야 했다.
가장자리 2m(표시한 부분)를 비워두고 벼를 심은 논. 따오기들이 편히 들어와 먹이를 찾으라는 주민들의 배려다.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그럼에도 따오기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 주민들은 ‘자연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엔 농작물을 먹는 새들은 농약을 사용해 ¤아내고 없애야 할 대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 기후위기 문제가 부각되고, 자연 보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친환경을 경제적 돌파구로 삼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우포늪. 국내 내륙 최대 습지인 이 곳은 다양한 생물들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보고다.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6년 전 창녕으로 귀농한 공희표 씨(61)는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다. 따오기가 사는 우포늪 주변만큼 친환경 농사가 어울리는 곳이 없다는 판단이었다. 공 씨는 “이제 소비자들은 값이 싸고 양이 많은 것보다 어떤 땅에서 어떻게 농사지은 쌀인지에 더 관심을 가진다”며 “고령화된 농촌이 지속 가능하게 성장하려면 결국 사람과 동물이 모두 함께 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공 씨는 향후 친환경 농사에 동참하는 창녕 주민들이 늘면 ‘따오기 쌀’ 브랜드를 만드는 것도 고민하고 있다.
우포늪 인근에서 먹이를 찾는 새들. 따오기 외 다른 여러 새들도 날아온다. 맨 왼쪽은 천연기념물 제205-2 노랑부리저어새.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따오기 복원에 따라 창녕의 자연도 건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따오기가 살 수 있게 논에 미꾸라지를 풀고 농약 사용을 멈추자 새들이 모였다. 2016년 60여 마리가 관찰된 제비가 올해는 200마리 넘게 관찰됐다. 논에서 오리가 들어가 노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 볼 수 없던 모습이다.
입에 미꾸라지를 물고 날아가는 따오기.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취재진이 지난달 창녕군 유어면 우포따오기복원센터 인근의 한 습지를 찾았을 때도 따오기는 중대백로 쇠백로 노랑부리저어새 등과 함께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노랑부리저어새도 따오기처럼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2급이다. 야생에 나온 따오기들은 이들과 자리다툼을 하며 열심히 미꾸라지를 찾아 먹고 있었다. 이따금 먹이를 뺏기지 않기 위해 미꾸라지를 부리에 물고 푸드덕 날아가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지난달 11일 경남 창녕 우포따오기복원센터에서 김성진 따오기서식팀 박사가 야생 적응 훈련 중인 따오기를 살펴보고 있다.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따오기의 활동 반경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김성진 우포따오기복원센터 따오기서식팀 박사는 “따오기들이 먹이를 찾아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데다, 먹이를 찾으면 그곳에 머물면서 야생성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따오기들은 가깝게는 경남 밀양시와 사천시 하동군, 멀리는 경북 경주시와 전북 남원시, 강원 영월군까지 날아가고 있다. 지난 겨울에는 우포늪을 벗어나 창원시 내서읍 광려천에서 월동한 따오기도 나왔다.
창녕 하늘을 나는 따오기. 창녕=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따오기 복원 사업의 최종 목표는 따오기가 예전처럼 먹이를 찾아 이곳저곳에서 사는 것이다. 여기엔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북한 등도 포함된다. 김 박사는 “따오기가 사는 곳은 생태계 건강성이 확인된 곳인 만큼 사람에게도 이롭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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