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경력만 26년인 김호철 신임 감독(66)은 16일 IBK기업은행 선수단과의 첫 만남에서 이 같은 이야기부터 꺼냈다. 자신부터 일절 선수들에게 지난 이야기에 대해 묻지 않았다고 한다. 김 감독은 “밖에서 들은 이야기도 많지만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루빨리 팀을 정상화할까란 생각 뿐”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구단에서 불거진 내홍 사태에 대해서는 “본분을 지키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답했다.
버럭호철에서 섬세호철로
스스로도 노력 중이다. 18일 흥국생명과의 경기에서 기업은행 감독 데뷔전을 치른 그는 “경기 내내 카메라가 내 욱하는 표정을 기다리고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 속으로 ‘화내지 말자’는 생각만 했다. 마스크로 표정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며 웃었다. 경기 뒤 대신고, 한양대 선배인 김형실 페퍼저축은행 감독(70)에게 ‘여성들을 위한 심리학’ 등 여성 관련 책 2권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21일에는 2년차 센터 최정민(19)의 생일을 맞아 장미꽃 20송이를 직접 선물해 선수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선수들과의 ‘마니또’ 놀이의 재미에 빠져있기도 하다. 모두 남자부에서는 해보지 못한 경험들이다. “앞으로 선수 생일 때마다 꽃집에 가게 생겼다”며 엄살을 떠는 김 감독의 모습에서 섬세호철의 가능성이 느껴졌다.
“선수가 주인공이 되는 배구 하겠다”
세계적인 명 세터로 이름을 날렸던 김 감독이 조송화(28) 이탈 후 팀의 새 주전 세터가 된 김하경(25), 3년차 이진(20)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을지도 팬들의 관심거리다. 김 감독은 “세터 출신 감독이 팀에서 가장 만족하기 어려운 포지션이 세터다. 두 선수 모두 당분간 고생할 것. 당장 기술적인 변화보다는 실전 경험이 적은만큼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새 출발선에서 첫 걸음을 뗀 김 감독에게 목표를 물었다. 김 감독은 “선수생활 마지막 3년을 남겨놓고 비로소 배구의 재미를 깨달았는데 막상 감독이 돼 그 재미를 모르고 살았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났다. 선수들에게 강압적으로 시켜서 운동을 하는 시대는 지났다. 선수들이 스스로 재미를 느껴서 배구를 하는, 감독보다는 선수가 주인공인 그런 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내 천직은 배구”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의 오랜 고민이 느껴지는 대답이었다.
용인=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