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입법회 90석중 89석 친중파… 내년 ‘中거수기 의회’ 출범 내년 홍콩반환 25주년이 분기점 習 ‘코로나 후 첫’ 람 행정장관 접견… 中, 사실상 ‘일국일제’ 선언만 남아
홍콩 입법회 선거가 치러진 19일 홍콩 선거관리위원회 위원들이 투표함을 열어 용지들을 쏟아내고 있다. 선거 결과가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전망에 유권자들 또한 관심을 보이지 않아 투표율이 역대 최저 수준인 30.2%에 그쳤다.홍콩=신화 뉴시스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사실상 폐기 수순에 돌입했다.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될 때 중국은 2047년까지 홍콩 자치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홍콩 ‘일국양제’의 종말
19일 한국의 국회격인 홍콩 입법회 선거에서 전체 의석 90석 가운데 89석이 친중파 인사로 채워졌다. 올해 3월 홍콩당국이 자격 심사를 거친 친중 인사만 공직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제를 개편한 후 치러진 첫 선거에서 예상대로 ‘중국의 거수기 의회’가 탄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로 중국이 그간 홍콩의 행정 사법 입법권 중 유일하게 완벽히 장악하지 못했던 입법권마저 손아귀에 넣었다고 보고 있다. 1997년 영국이 중국에 홍콩을 반환할 때 중국은 향후 50년간, 즉 2047년까지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유지해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50년의 채 절반이 지나기도 전에 중국의 직접 통치, 즉 ‘일국일제(一國一制·한 국가 한 체제)’ 시대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習, 코로나19 사태 후 첫 외부 인사로 람 접견
시 주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제사회의 반중 정서 등을 이유로 지난해 1월 미얀마 방문 이후 약 2년간 해외 방문을 하지 않고 있다. 또 베이징에 오는 각국 고위급 인사 역시 만나지 않고 있다. 이런 시 주석이 코로나19 사태 후 베이징을 방문한 외부 인사를 직접 대면한 것은 이날 람 장관이 처음이라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시 주석이 친중파가 싹쓸이한 이번 홍콩 선거 결과를 얼마나 반겼는지를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7년 임기 5년의 행정장관에 취임한 람은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만날 때마다 마치 주군 관계인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늘 시 주석이 회의 탁자 상석에 앉고 람 장관이 측면에 앉아 대화를 나누기 때문이다. 중국과 홍콩의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앞서 13일 과거 포르투갈이 통치했고 1999년부터 역시 일국양제를 시행 중인 마카오에도 중국 정부가 직접 임명하는 국가안보 관련 직책을 신설하기로 했다. 인구 약 750만 명의 홍콩보다 친중 성향이 훨씬 강하고 인구 또한 약 68만 명에 불과한 마카오는 오래전부터 중국의 직접 통치를 받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도 중국은 “국가 수호는 중앙정부의 권한”이라며 마카오에 대한 통제도 강화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허울뿐이던 마카오의 일국양제 또한 무너졌음을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 習 집권 후 일국양제 붕괴 가속
1982년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오른쪽)가 중국 베이징에서 덩샤오핑(왼쪽)과 만나 홍콩 반환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최근 중국이 홍콩에 대한 직접 통치를 강화하면서 사실상 일국 양제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국망 웹사이트 캡쳐
실제 반환이 이뤄진 직후만 해도 중국은 서구로부터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훌륭한 동거’란 평가를 들을 정도로 홍콩의 자치권을 잘 보장해주는 듯 행동했다. 반환 20년 후인 2017년부터는 간선제로 선출하는 행정장관을 직선제로 바꿔주겠다고도 약속했다.
2012년 말 시 주석이 집권하면서 중국은 본격적으로 ‘양제’ 대신 ‘일국’을 앞세우며 홍콩을 직할통치하겠다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우선 행정장관 직선제 약속을 폐기해 2014년 민주화 시위 ‘우산혁명’ 발발을 야기했다. 우산혁명 또한 거세게 탄압했다.
반중 인사의 강제 연행 또한 서슴지 않았다. 중국 체제에 비판적인 서적을 판매하는 것으로 유명한 ‘퉁뤄완 서점’의 대주주 리보(李波) 씨 등 서점 관계자 5명은 2015년 10월에서 12월 사이 잇따라 실종됐다. 이들은 대륙으로 연행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까지 생사조차 불투명하다. 중국 경찰이 홍콩 땅에서 홍콩 시민을 연행해 간 것은 ‘일국양제’의 완전한 위반인데도 당시 홍콩당국은 중국에 항의조차 하지 않았다. 홍콩 시민들 사이에서 ‘반중 활동을 하다 보면 쥐도 새도 모르게 본토로 끌려갈 수 있다’는 공포가 번진 것도 이때부터다.
시 주석 집권 후 중국은 홍콩 주룽반도와 맞닿은 광둥성 남부에 군대도 대폭 늘렸다. 2019년 홍콩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곧바로 중국으로 송환할 수 있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 지난해 반중 활동을 한 홍콩 시민에게 최대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국가보안법 제정 반대 시위 때도 탱크를 앞세운 인민해방군을 광둥성에 주둔시켜 시위대에게 유혈 진압 가능성을 노골적으로 과시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이 홍콩 유명 폭력조직 삼합회와 손잡고 흰옷을 입은 일종의 자경단원을 투입해 시위대의 무차별 폭행을 조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홍콩 시민들로선 직접적인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소수민족 역이용 우려… 중영 공동선언 폐기 준비
중국은 그간 이런 요구를 탄압하고 묵살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소수민족 인권 탄압에 대해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이것이 내년 2월 베이징 겨울올림픽의 흥행, 내년 하반기 시 주석의 3연임 확정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자 중국의 태도 또한 달라진 것으로 풀이된다. 즉, 소수민족의 일국양제 요구를 직접적으로 거부하기보다 ‘홍콩의 중국화’를 통해 소수민족에 홍콩을 일종의 역할 모델로 제시하려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최종 목표가 1984년 일국양제를 규정한 중영 공동선언을 폐기해 ‘일국일제’를 선언하는 데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국양제의 핵심 가치인 항인치항과 높은 수준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고도자치(高度自治)’ 개념이 모두 이 선언문에 담겨 있다. 이 선언이 폐기되면 형식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일국양제 폐지의 걸림돌이 완전히 사라진다. 중국이 이미 관련 작업에 착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서방이 이번 입법회 선거가 일종의 관제선거여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비판하자 “서방은 홍콩 문제에 간섭할 때 늘 ‘중영 공동선언’을 언급하지만 중국의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역사적 문건일 뿐”이라고 평가 절하했다. 내키면 언제든 이 선언을 폐기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 친중 인사끼리 경쟁하는 행정장관 선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22일 베이징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만났다. 이날 시 주석은 친중파가 장악한 사흘 전 홍콩 입법회 선거 결과를 두고 “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 홍콩의 현실에 맞는 민주주의 발전을 추진했다”며 람 장관을 치하했다. 베이징=신화 뉴시스
홍콩 현지에서는 람 장관과 렁 전 장관 중 1명이 중국의 최종 낙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람 장관은 정무사장 시절인 2014년 우산혁명 진압을 주도한 공을 인정받아 장관으로 발탁됐다. 그는 중국공산당 100주년과 홍콩 반환 24주년이 겹친 올해 7월 1일 반환 기념식을 포기하고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시 주석의 연설을 지켜봤다. 매년 7월 1일 열리는 홍콩 반환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은 행정장관은 그가 처음이다.
다만 그는 송환법 반대 시위 당시 시위대의 기세에 눌려 결국 이 법을 철회했고 결과적으로 중국에도 부담을 안겼다. 당시에도 중국이 그를 경질할 것이란 보도가 잇따랐다. 시 주석 또한 22일 베이징에서 람 장관을 만날 때 그를 치하하면서도 연임 여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렁 전 장관은 현직 장관이던 2010년 중국 반체제 인권운동가 고 류샤오보(劉曉波)가 당시 노벨 평화상을 타자 “이 상은 덩샤오핑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노골적인 친중 행보로 현재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까지 올랐다. 아직까지 행정장관을 두 번씩 한 인물이 없다는 점을 감안할 때 둘 중 한 명이 된다면 일종의 새로운 기록을 쓸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반환 25주년을 맞는 내년 7월 1일 홍콩 곳곳에서 대대적인 축하 행사를 벌일 가능성도 높다. 시 주석은 반환 20주년을 앞둔 2017년 6월 말 현직 국가주석으로는 20년 만에 홍콩을 찾아 이곳이 사실상 중국 땅이라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했다. 코로나19 변수가 있긴 하지만 내년 7월 1일에도 중국 고위급 인사가 홍콩을 찾아 비슷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이란 의미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중국어학)는 “현재 홍콩의 상황은 중국이 공개적인 ‘일국일제 선언’ 이외의 모든 것을 다 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직접 통치를 강화하는 중국에 대한 홍콩 시민의 항거 또한 어려워졌다고 내다봤다. 국가보안법 강행 후 주요 반중 인사들이 모두 해외로 도피했고 중국의 무력 진압 우려, 코로나19 등으로 최대 300만 명이 모였던 송환법 반대 시위 때처럼 대규모 인파가 모이는 것이 불가능해진 탓이다. 주 교수는 “톈안먼 사태 이후 30년 넘게 중국 본토에서도 민주화운동이 다시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공권력의 횡포를 경험한 홍콩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뭉치는 것이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김진호 단국대 교수(정치외교학) 또한 홍콩 시민이 ‘일국양제’를 통해 원했던 것은 ‘자치’보다 ‘언론자유 보장’에 가까웠는데 이마저도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6월 반중 매체 핑궈일보 폐간 등으로 홍콩 언론계가 사실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고 미국 또한 홍콩보다는 대만 사수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만큼 중국이 굳이 일국양제 폐기를 공공연하게 선언할 필요조차 없어졌다는 의미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