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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허진석]중고차 ‘바가지’ 사라질까

입력 | 2021-12-25 03:00:00


중고차를 살 때 바가지를 쓸까 봐 겁이 난다는 사람들이 많다. 허위 매물 판매상을 고발하는 온라인상의 동영상을 보면, 400만 원에 판다는 광고를 보고 온 사람에게 3200만 원에 팔려고 하는 일도 일어난다. 초기에 일부 금액을 숨겨 구매 결정을 끌어낸 뒤 계약 단계에서 추가 비용을 덧붙인다. 소비자가 거래를 무르려고 하면 ‘차량 이전을 마쳤기 때문에 취소하려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 등의 ‘반협박’으로 강매하는 식이다. 주행 거리나 사고·침수 차량을 제대로 확인하기 힘들 것이라는 불안도 소비자들의 중고차 시장 접근을 막는다.

▷현대차나 기아차 등 완성차를 만드는 대기업들이 내년 1월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했다. 타사가 아닌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 취급하는 방식이다. 자사 중고차가 믿을 만한 가격에 거래되면 중고차 시세가 높아지고, 이는 신차 판매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중고차를 좀 더 안심하고 구입할 수 있는 유통 경로를 가지게 되는 셈이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9년 2월에 이미 중소기업 적합 업종에서 해제됐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최근까지 정치권과 중소벤처기업부가 나서서 완성차 업체와 기존 중고차 매매 업계 간 상생 협의를 중재했지만 결렬됐다. 중고차 매매 업계는 협상 과정에서 신차 판매권을 달라고 요구했지만 완성차 업체들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통보했다. 최종 결정은 중기부가 내년에 하겠다고 한다. 완성차 업계는 이미 3년 가까이 기다려 왔다며 먼저 시장 진출을 선언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이미 수입 자동차 회사들이 중고차 사업을 활발하게 펼치며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유명 수입 자동차 회사 홈페이지에 가면 ‘인증 중고차’라는 이름으로, 그 회사가 성능을 보증하는 차량들이 차종별·가격별로 일목요연하게 나온다. 미국과 독일에서는 신차 판매 딜러들이 전시장에 중고차도 함께 전시해 두고 판매할 정도다. 차량의 생애 전 주기를 완성차 업체들이 관리하는 세계적인 추세에서 한국은 뒤처지고 있는 셈이다.

▷불투명성은 시장의 성장을 막는다. 국내 중고차 거래 규모는 신차 시장의 약 1.3배로 선진국의 2∼2.5배와 비교하면 훨씬 작은 수준이다. 시장에 대한 불신으로 당사자 간 거래 비중이 미국이나 독일은 30% 선인데, 우리는 55%나 된다. 중고차 매매 업계는 최근 들어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이번 완성차 업계의 중고차 시장 진출 선언은 투명성을 높이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넓힐 수 있는 결정을 빨리 내놓아 불필요한 혼란을 줄여야 할 것이다.



허진석 논설위원 jameshu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