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환경 변했는데 정부는 예전대로 시장-인재 확보 동반자로 함께 나서야
김용석 산업1부장
“조직과 융화하지 못한 직원들을 몇 년 동안 살펴봤습니다. 의외로 좋은 대학 출신이 많았습니다. 구성원 모두 똑똑할 필요 없어요. ‘슈퍼 스마트’ 몇 명만 있으면 나머지는 책임감 있게 주어진 일을 수행하면 됩니다.”
10여 년 전 일이다. 삼성전자에서 인사를 오래 담당한 고위 임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삼성전자 경쟁력이 제조에서 나오던 시기였다. 1990년대 중반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세계 초일류 품질경영’을 전파하며 세탁기 뚜껑이 규격에 맞지 않자 칼로 깎아내는 제조 현장을 질타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자동차 철판 이음새가 어긋나기(단차) 일쑤인 테슬라가 세계 최고 전기 자동차로 꼽힌다. 마니아들은 테슬라가 자동차 제조사가 아니라 미래를 먼저 경험하게 하는 회사라고 합리화한다.
미국에서 돌아와 ‘냉혹한 현실’을 말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첫 조치로 단행한 것은 인사제도 혁신이다. 10여 년 전 ‘책임감 있는’ 신입사원을 뽑아 ‘파란 피(삼성 상징 색)’ 돌게 하는 교육으로 사람을 바꿨다면, 이제는 ‘슈퍼 스마트’가 일하고 싶은 회사로 삼성전자를 바꾸겠다는 의미다.
이런 시대에 연간 수만 명을 직접 신규 채용하는 숙제를 푼다는 것은 10여 년 전과 차원이 다른 일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기업에 고용을 독려하고 성과를 집계하는 방식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네이버, 카카오가 아닌 제조 대기업에 먼저 수만 명 채용을 요청한 건 정부 생각이 여전히 제조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증거다.
사업 환경도 달라졌다. 바이오 신약사업을 키우고 있는 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솔직히 바이오가 주력 신성장사업이 되긴 어렵다”고 토로했다. 뛰어난 신약 개발 능력을 갖춘다 해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이라는 진입장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기업 성장과 생존에서 정부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에 반도체 공장을 짓고, SK가 조지아에 배터리 공장을 짓는 것은 사업 유불리만으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국가 기능이 커지면서 기업과 국가의 2인 3각 게임으로 승부가 판가름 난다는 얘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 기여한 주요 그룹 총수를 불러 감사하는 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정부는 기업 성과를 치하할 게 아니라 동반자로 함께 경쟁에 나서야 할 주체다. 정부 성과를 기업들이 감사하는 자리가 열리는 장면도 꼭 지켜보고 싶다.
김용석 산업1부장 y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