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15일 KBL 데뷔식을 치른 후 한 경기도 안 빠지고 코트에 선 이정현은 25일 자신의 친정팀이기도 한 KGC전에서 50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5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는 이정현에 앞서 KBL에 41명이 있었다. 하지만 한번도 안 빠지고 500경기 이상 코트에 선 선수는 이정현이 처음이다. 현역시절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 불렸던 추승균 전 KCC 감독도 연속으로는 384경기(역대 2위)에 나섰다. 이틀 뒤인 27일, DB전에서 이정현은 자신의 연속 기록을 ‘501’로 늘렸다. 이정현이 불의의 부상을 입지 않는 한 2위와의 격차는 지금보다 크게 벌어질 확률이 높다.
속살을 까볼수록 이정현의 기록들은 돋보인다. 501경기 중 10분 이하로 출전한 경기는 3경기에 불과하다. 반대로 연장 접전 등을 치르며 40분 이상 뛴 경기가 11번이다. 평균 출전 시간은 29분57초다. 4쿼터를 치르는 경기에서 3개 쿼터를 코트 위에 섰다는 의미다. 단순히 출장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는 뜻이다. 몸이 좋은 날, 나쁜 날을 안 가리고 뛰면서도 평균 13.2점을 넣었다. 이정현은 “부상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아픔에 둔한 편인데다 뛰면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고 나면 이마저도 잊었던 것 같다. 컨디션이 정상의 40~50%만 되도 팀에 민폐를 안 끼칠 정도라면 뛰겠다는 절실한 마음을 갖고 임했다”고 말했다.
선수생활 내내 큰 부상이 없었던 비결에 대해 이정현은 “천부적인 재능이 없어서다”라는 엉뚱한 대답을 내놓는다. 농구선수에게는 축복이라고도 불리는 고무공 같은 탄력 같은 재능이 이정현의 입을 빌자면 ‘없다’. 농구공을 잡은 순간부터 천부적인 부분이 한두 개 쯤 있는 쟁쟁한 동료들 사이에서 보잘 것 없는 몸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는 방법을 골몰해왔단다.
이정현의 농구를 보면 수비가 ‘붙으면 돌파하고 떨어지면 쏘는’ 기본에 충실하다. 부상을 유발할 수 있는 무리한 동작도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에이스 스토퍼’ 등에 막혀 공격의 활로가 보이지 않을 때는 미련 없이 동료들의 기회를 살펴 공을 돌린다. 농구지능을 지칭하는 ‘BQ’만큼은 확실히 천부적이다.
내년이면 한국 나이로 어느덧 서른여섯이다. 선수생활의 황혼기에 접어드는 때라 이정현의 초인적 기록이 중단된다 해도 낯설지는 않을 때다. 이정현도 “언젠가 연속 출장이 힘들어질 수도 있고 팀 내에서 역할이 주축에서 보조로 줄어들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런 과정이 급격한 ‘추락’이 아니라 부드러운 착륙이 되게끔 매 경기 마음을 비우고 순리대로 풀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시기를 기다리며 마냥 손놓고 있지만은 않는다. 서른이 훌쩍 넘고 예전보다 몸의 회복시간이 길어졌다는 걸 체감했다는 그는 하루 8시간 이상 잘 자는 습관을 만들며 매 경기를 치열하게 뛸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현은 “나중에 (은퇴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라며 씩 웃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