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우 정치부 차장
“10년이 흘렀는데… 갑갑하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고위 당국자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10년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세월, “갑갑하다”는 ‘강산이 한 번 변했는데’ 김정은을 아직도 잘 몰라서 그렇다는 얘기다. 나름대로 북한 소식에 정통하다고 자부하는 그의 목소리엔 답답함이 묻어났다.
1인 독재 체제인 북한에서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은 당연히 우리 정부의 ‘1호’ 관심사다. 정보기관은 대북 휴민트(인적정보), 이민트(영상정보), 코민트(통신정보) 등을 총동원해 김정은을 파악하고 기록하고 분석한다. 인공지능(AI)을 동원해 김정은 몸무게 변화까지 실시간 추적하고 있음을 떠올리면 우리 정보기관이 ‘게을러서’ 당국자가 “김정은을 모르겠다”고 말한 건 아닐 터다.
10년이 지난 지금, 당국자는 망설임 없이 “판단 착오”라고 토로했다. 일단 김정은의 행보나 발언이 나이답지 않게 노련하고 고차 방정식이라 풀기 어렵다고 했다. 대북 업무에 오래 관여해온 당국자들은 대체로 비슷하게 얘기한다. 김정은이 왕좌에 오르기 최소 수년 전부터 은밀하고 또 체계적으로 후계 수업을 받았을 거란 분석도 그래서 나온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정은의 협상 패턴 등을 집중 분석한 미 당국자가 우리 카운터파트에게 들려준 얘기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김정은을 두고 “선대를 닮았지만 더 유연하고 예측이 어려운 변화무쌍한 독재자”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정은의 수를 읽기 어려운 이유가 그의 “강한 자존심”과 연관돼 있다는 해석도 있다. 김정은의 높은 콧대와 성과 지향적 스타일, 이 두 가지 성향이 조합돼 파생된 변수가 우리 정부의 ‘대북 협상 시나리오’에 없을 때가 많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교착상태다. 우리 정부는 협상 문이 열리지 않는 이유를 때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문을 걸어 잠근 북한에서, 때론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지나치게’ 신중한 대북 정책에서 찾고 있다.
아무튼 시간은 흐르고, 임기 말 문재인 정부의 초조함은 커지고 있다. ‘어게인 2018’을 꿈꾸지만 북한은 꿈쩍도 하질 않는다.
신진우 정치부 차장 nice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