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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심리[이정향의 오후 3시]

입력 | 2021-12-29 03:00:00

〈42〉 존 패트릭 샌리 감독의 ‘다우트’



이정향 영화감독


1964년 미국 뉴욕의 중산층 마을. 가톨릭 교구에서 운영하는 중학교의 교장인 알로이시스 수녀는 지나치게 엄격해서 학생들 모두가 두려워한다. 하지만 주임신부인 플린은 학생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고 농담도 잘해 인기가 많다. 얼음장 같은 교장 수녀는 사교적인 성격의 주임신부가 학교의 전통을 망치는 것 같아 못마땅하다. 그러던 중 그녀는 그가 한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심을 품게 되고, 모든 정황을 그 의심에 끼워 맞추며 확신에 다다른다. 플린 신부가 변명할수록 그녀의 확신은 불에 기름을 부은 듯 더욱 강해질 뿐이다.

시작은 교장 수녀의 사소한 오해였다. 주일 미사 때 플린 신부의 강론이 자기를 우회적으로 비난한 거라고 여긴 교장 수녀는 그의 모든 행동이 거슬리기 시작한다. 그녀는 설탕, 볼펜, 라디오가 학생들에게 해롭다며 철저히 금지시키는데, 플린 신부는 이것들을 고루 즐긴다. 그녀 스스로 자신에게 족쇄를 채운 탓에 그녀에겐 허용되지 않는 것들을, 하지만 마음속에선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플린은 얄밉게도 다 누리는 듯하다. 그를 향한 질투와 분노는 그녀의 의심을 확신으로 둔갑시켜 그를 학교에서 쫓아낸다.

백신패스 시행으로 접종자와 미접종자들 사이에 의심과 불신의 골이 깊어졌다. 접종자들은 미접종자들을 감염 위험군이라고 배척하고, 후자들은 접종했어도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건 마찬가지라며 백신패스의 의도를 의심한다. 감염된 무증상 접종자와 감염이 안 된 미접종자 중 누가 출입에 제한을 받아야 하느냐는 항변엔 차라리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항체 보유 여부를 따지는 항체패스가 공정할 것 같다. 그러면 접종자들은 섭섭할 거다. 부작용의 위험을 무릅쓰고 접종했다면 보상심리가 발동한다. 집단면역에 동참하지 않은 미접종자들을 이기적이라고 의심할수록 접종자들은 더 대접받길 원하지만, 이젠 집단면역이란 명분도 사라졌기에 미접종자들도 이기적이란 욕을 먹는 게 억울하다.

교장은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은 후 속죄 의식으로 수녀원에 들어왔고, 자신을 무채색의 삶 속에 가둬버렸다. 세상의 재미를 등지고 사는 대신 보상심리로 남들도 그러하길 강요한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은 그 누구보다도 자유와 생기를 갈망한다. 그녀는 재치 만점인 농담도 할 줄 알고, 학생한테서 압수한 라디오를 즐겨 듣곤 한다. 이런 내면이 꿈틀댈수록 그녀는 더욱 자신을 억누르며 감시하고, 그 엄격한 잣대로 타인마저 감시와 의심의 눈으로 조인다. 그녀가 고깝게 들었던 플린 신부의 강론은 “확신이 없을 때, 의심도 확신만큼 강하고 끈질기다”였다. 영화 제목처럼 이 모든 것의 시초는 ‘다우트(Doubt·의심)’였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