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사학자 심정섭 씨, 자료 첫 공개… 사이토 마코토-도조 히데키 명의로 일본인 교사 ‘미키’ 인사 문서 발행… 광주고보 근무 후 고등관으로 승진 일제의 황민화 교육 정책 관여한 듯
향토사학자 심정섭 씨가 29일 일본 총리를 지낸 태평양전쟁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와 조선총독부 총독 등을 역임한 사이토 마코토가 일본인 교유(교사) 미키 마사키에게 준 임명장과 승진장 등 일제 교육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으로 일본의 대표적인 군국주의자로 꼽히는 사이토 마코토(齋藤實·1858∼1936)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1884∼1948)의 이름으로 발행한 교육 자료가 공개됐다.
향토사학자 심정섭 씨(78·광주 북구)는 29일 동아일보에 사이토 마코토, 도조 히데키 등의 명의로 된 일본인 교사 미키 마사키(三木正枝)의 임명장 등 문서 4장을 처음 공개했다. 문서에는 일본 정부를 상징하는 오동잎과 벚꽃, ‘인(印)’이 새겨져 있다. 문양은 빛을 비추면 볼 수 있다.
공개된 문서 중에는 조선총독이던 사이토 마코토 명의의 임명장 2장이 포함돼 있다. 하나는 1923년 12월 휴직한 일본 후쿠오카현 와카마쓰(若松)중학교 교유(교사 또는 교육행정직) 미키를 조선총독부 고등보통학교 교유로 임명한다는 발령장이다.
이를 종합하면 임명장을 받은 미키가 광주고보에 근무했던 것으로 보인다. 노성태 광주국제고 수석교사(62)는 “광주고보에는 당시 대부분이 일본인 교사였고 조선인 교사는 한두 명에 불과할 정도로 차별이 심했다”고 말했다.
최규창 선생 등 광주고보 학생들은 1925년 수업시간에 조선 역사, 조선 민족을 차별하는 일본인 교사들에 대한 배척운동을 시작했는데, 1928년 동맹휴학, 1929년 학생독립운동의 배경으로 꼽힌다. 최 선생은 1938년 친척에게 보낸 편지에 “후배들이 동맹휴교로 학업에 정진할 수 없고 교장마저 없어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본인들의 무성의한 교육 때문에 조선인 학생들만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적었다. 다만 미키가 학생들에게 어떤 평가를 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임명장은 1933년 1월 20일 일본 내각 총리가 된 사이토가 미키를 고등관 7등(급)으로 임명하는 승진장이다. 승진된 미키는 당시 조선총독부 학무국 관리로 일하며 일제의 우민화 교육을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문서 2장 중 하나는 1938년 9월 30일 일본 내각이 미키를 고등관 5등으로 발령을 낸다는 승진장이다. 고등관 5등은 광역자치단체 부단체장급에 해당한다. 마지막 문서는 도조 히데키가 미키가 사표를 내자 해임한다는 내용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