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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바게트를 찾아라[정기범의 본 아페티]

입력 | 2021-12-30 03:00:00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프랑스인들의 주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바게트다. 밀가루와 물, 소금, 그리고 효모 이 네 가지 재료로 만드는 막대기처럼 생긴 바게트는 매일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동네 빵집 진열장에 나란히 진열된다. 이를 만들려고 제빵사는 매일 새벽 3시에 출근한다.

파리에는 매년 최고의 바게트를 만드는 장인을 선정하는 대회가 있는데 대회 이름은 ‘그랑프리 드 라 바게트(Grand Prix de la baguette)’다. 프랑스의 대통령을 지낸 자크 시라크가 파리 시장으로 재임했던 1994년에 프랑스 빵집·제과협회와 함께 처음 만든 이 대회의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 1등을 거머쥔 사람들의 빵집에서 생산한 바게트 맛을 비교하는 일은 바게트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기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협회에서 정한 바게트의 기준인 길이 55∼65cm, 무게 250∼300g을 지켜야 하며 1kg의 밀가루에 18g의 소금 함량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 심사위원으로는 제빵 명장과 전년도 바게트 대회 우승자, 파리 시민 6명 등이 참여한다. 이들은 빵의 익힘 상태와 맛, 향, 빵의 부스러짐 형태, 빵의 외관 등 5가지 기준에 따라 엄격한 심사를 거쳐 1등을 가린다.

이렇게 그랑프리를 거머쥔 베이커리에는 상금 4000유로(약 540만 원)가 전달되며 1년 동안 프랑스 대통령 관저이자 집무실에 매일 아침 15개의 빵을 배달할 수 있게 된다. 보통 1등을 차지한 베이커리는 이전보다 매출이 15∼20% 증가한다고 한다. 1등을 차지하기 위해 참여하는 베이커리 300여 곳의 경합이 치열하지 않을 수 없다. 2021년에는 파리 12구의 ‘르 불랑제 드 뢰이’가 ‘그랑프리 드 라 바게트’의 수상자가 됐다. 최근 몇 년간의 수상자를 보면 알제리, 튀니지, 모로코와 같은 아프리카 이민자 출신이 대부분이다. 새벽에 출근하고 밤늦도록 일해야 하는 업무의 특성상 젊은 프랑스인들이 베이커리와 레스토랑을 떠나는 대신 그 자리를 이민자들이 채워 가고 있다.

프랑스에서와 똑같은 바게트 맛을 내기 위해 밀가루와 소금, 이스트는 물론 물까지 실어 날라 만들었다는 미국 뉴욕의 베이커리 운영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러나 파리의 습도와 공기만은 어찌 할 수 없어 프랑스 바게트와 똑같이 만들기에 실패했다고 한다. 제대로 된 김치를 먹으려면 한국에 가야 하듯이 제대로 된 바게트를 먹기 위해선 프랑스의 베이커리를 찾아야 하는 것은 진리다. 이제 파리 여행에 새로운 미션이 생겼으니 바게트 1등 한 곳에 가서 바게트를 사 들고 마켓에 들러 정부가 공인한 ‘원산지 보호 명칭(AOP)’을 받은 버터를 발라 먹어 보는 것이다. 입천장만 까지고 딱딱한 막대기와도 같은 바게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떨치고 진정한 파리 베이커리에서 맛보는 바게트의 매력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파리 여행은 행복해질 테니 말이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