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형 기자
올해 끝자락에 ‘맥주만 형님’이 독일로 돌아갔다. 알버트 비어만 전 현대차·기아 연구개발본부장. 독일 BMW에서 고성능 브랜드 개발을 총괄하다 2015년 현대차그룹의 고성능차 개발 책임자로 합류한 그를 한국의 자동차 마니아들은 ‘맥주만 형님’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곤 했다.
오랫동안 국산차에 냉담했던 자동차 마니아들조차 그를 이렇게 친근하게 불렀던 데는 이유가 있다. 2018년부터 현대차그룹의 연구개발 전반을 총괄해 온 그가 국산차의 성능을 실질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잘 달리는 차’라는 확고한 연구개발 방향을 제시했고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성과는 그가 한국을 떠나면서 함께 생활했던 남양연구소 임직원들에게 남긴 글 말미에 덧붙인 사진 한 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비어만 전 본부장이 위장막 씌운 준중형급 차에 오른쪽 팔꿈치를 걸쳐 올린 채 웃고 있는 사진. 뒷부분이 빵빵한 이 해치백 모델은 현대차의 고성능차 ‘i30N’이다.
잘 달리는 차라는 단순해 보이는 명제는 어쩌면 최근 한국 차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과제였을 수 있다. 일본 기업과의 제휴로 시작한 한국 차 산업은 엔진 같은 핵심 부품의 국산화에 성공하고 가성비 좋은 차로 빠르게 해외 시장을 파고드는 역사를 써냈다. 하지만 고속 주행과 격한 코너링에서도 세계적인 브랜드와 어깨를 견주는 안정감 있는 차를 잘 만들어 내는 것은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유럽 무대에서도 호평 받는 고성능차 브랜드를 만들어내고 이를 기반으로 기존 차량의 주행 성능까지 크게 끌어올린 그가 돌아간 시점에 차 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급격한 전동화 흐름 속에 배터리 기술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차와 사람의 관계 자체를 새롭게 설정하고 있는 차량용 소프트웨어는 차 산업 전체를 뒤흔드는 요소로 떠오르는 중이다.
잘 달리는 차를 만들기 위해 비어만 전 사장이 기술적으로 유난히 강조했던 것은 바로 무게 배분이었다. 차의 전후좌우에 고르게 분산된 무게가 안정적인 주행 성능의 필수요소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제 차뿐만 아니라 차 산업 전체가 새로운 무게 배분을 요구하고 있을 수 있다. 미래차 시대에도 주행 성능과 디자인 같은 전통적 요소가 지니는 가치는 여전히 크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서 전동화,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모빌리티 서비스 같은 새로운 요소에 얼마만큼씩의 무게를 실을 것이냐가 새해 글로벌 차 산업의 가장 큰 화두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