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
조선의 3대 임금 태종의 4남 성녕대군은 오진으로 죽은 최초의 왕자일지 모른다. 적어도 현재까지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그렇다. 감염병인 천연두를 감기로 오인해 치료를 진행하다가 죽은 의료 사고였다. 냉혈한으로 알려진 태종도 자식의 죽음에 참척의 슬픔을 그대로 내보였다고 한다.
조선 초기 천연두(완두창)의 치료법은 태종의 의관들에 대한 추국 과정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성녕대군의 발진이 생기던 처음에 허리와 등이 아팠는데 의관들은 이를 ‘풍증’이라 진단하고 인삼순기산을 처방해 땀을 흘리게 했다. 뒤에 의서를 보니 완두창의 증상에도 허리와 등에 통증이 있었다. 또 병이 위독해진 날 이미 안색이 회백색이 될 만큼 증세가 악화됐는데도 의관은 이를 ‘순조로운 증세’라고 하고 안색이 황랍색이 되면 ‘최상의 증세’라고 했다. 비록 고의로 해치려는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이는 의관들이 마음을 쓰지 않아 그러한 것이다.”
비록 성녕대군의 천연두 치료에는 실패했지만 인삼순기산의 핵심 재료인 인삼은 전염병에 가장 효과적인 약재다. 면역력 증강은 전염병을 이기는 첫 번째 요체이고, 면역 증강제로는 예나 지금이나 인삼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전염병 예방의 특효약으로 신들의 지혜를 이용해 만들었다는 ‘신명단(神明丹)’에도 인삼이 들어간다. 추사 김정희는 귀양 가 있던 제주도의 바람과 습기로 인해 풍토병을 자주 앓았는데 인삼을 먹고 쾌차했다고 한다.
인삼의 면역 조절 효과는 과학적으로도 다양하게 증명되고 있다. 면역력을 일방적으로 증강시키는 것이 아니라 항원의 상태에 따라 적절히 면역을 억제하고 조절하는 것. 면역적 관점에서 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는 점막에 잘 붙기 위한 진화의 결과물이다. 면역의 핵심인 점액은 이물질의 접근을 방어하는 기능을 한다. 코로나19의 변종 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돌기를 늘리는 방향으로 변이를 거듭한 것도 결국 이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인삼의 효험 중 ‘생진법(生津法)’은 결국 진액을 생산하는 점액 기능의 보강을 의미한다. 그런 면에서 인삼은 오미크론의 창궐을 눈앞에 둔 지금 시점에 맞는 면역제로도 기대할 수 있다.
한약은 체질에 따라 약이 되고 독이 되기도 한다. 인삼도 복용해서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 좋고 나쁜가는 전문가의 진찰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조선 왕 중 최고의 인삼 애호가였던 영조도 인삼을 단독으로 복용한 예는 찾을 수 없다. 물도 뱀이 마시면 독이 되고 소가 마시면 우유가 되듯 인삼이 어떤 이에게, 어떤 면역 기능을 향상시킬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전문가의 몫이다.
이상곤 갑산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