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적 설계 오류 ‘누리호의 교훈’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는 10월 21일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했으나 3단 산화제탱크 내 헬륨탱크 이탈로 위성 모형을 궤도에 올리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올해 10월 21일 첫 발사에서 고배를 마신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실패 원인으로 산화제 탱크 내부에 장착된 헬륨탱크 고정장치 설계에서 가속도에 의해 커지는 부력을 고려하지 못한 점이 지목됐다. 헬륨탱크 부력 문제는 공교롭게 지금은 세계적인 재사용 로켓 회사로 발돋움한 미국의 스페이스X도 수년 전 겪었던 문제였다. 전문가들은 참고할 만한 과거 실패 사례가 있었음에도 사전에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번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기초적인 부분부터 다시 제대로 짚어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 부른 설계 오류 개선한 스페이스X
누리호 실패원인을 조사한 발사조사위원회 최환석 조사위원장(한국항공우주연구원 부원장)은 29일 “미국 스페이스X의 재사용 발사체 팰컨9도 2015년 상업 발사에서 헬륨탱크가 떠올라 부딪히며 폭발사고로 이어지는 사고를 겪었다”며 “발사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선진국도 겪었던 경험”이라고 말했다.
당시 스페이스X가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팰컨9에서도 산화제 탱크 안에 설치된 헬륨 고압탱크 고정장치가 발사 과정에서 발생한 가속도로 생긴 부력을 견디지 못하고 풀렸다. 3.2G(1G는 지상에서 중력 가속도) 가속도를 넘는 시점에 고정장치가 헬륨탱크의 부력을 견디지 못하고 부러져 헬륨이 유출됐고 폭발로 이어졌다.
헬륨탱크에 문제가 생긴 원인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스페이스X는 가속도를 감안해 4535kg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고정장치가 907kg을 견디지 못하고 파손됐다고 밝혔다. 팰컨9 내부에 같은 하중을 견디는 수백 개의 고정장치가 쓰였고 당시까지 여러 차례 비행을 통해 검증됐다고 했다. 설계에는 문제가 없었고 단순 부품 불량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2018년 3월 뒤늦게 조금 다른 내용의 검토보고서 요약을 발표하며 스페이스X측과 맞섰다. 스페이스X가 고정장치 소재에 항공우주 등급 스테인리스 스틸이 아닌 산업용 등급을 사용해 설계상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부품을 설계할 때 최대로 받는 힘보다 더 강하게 견디도록 설계해 여유를 줘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고 NASA는 지적했다.
스페이스X는 결국 팰컨9 로켓 버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면서 설계 오류를 개선했다. 이후 같은 문제로 사고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고 NASA는 더는 관련한 사항을 문제 삼지 않았다.
○누리호는 기초적 설계실수…다시는 반복 말아야
누리호의 경우 과거 스페이스X의 사고 사례와 비교하면 훨씬 더 기초적인 설계 실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482kg을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는 고정장치를 405kg만 견딜 수 있게 설계한 것이다. 권세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누리호 발사 시 4G 이상의 가속도가 발생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지상에 가만히 있는 것과 같은 1G로 설계했다”며 “가속도를 3G만이라도 설계했더라도 이번과 같은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스페이스X의 실패 사례가 있었음에도 사전에 설계 과정에 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학과 교수도 “작은 부분에 있어 오류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이런 문제를 설계에서 고려하지 못했다면 치명적인 실수”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험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데 대체로 공감했다. 2013년 발사된 나로호 이후 변변한 우주발사체 발사 경험이 없고 그만큼 우주 환경에 대한 이해를 가진 연구 인력이 아직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허 교수는 “나로호 1차 발사 때도 페어링이 안 열렸는데 진공 상태에 쓰는 전선이 아닌 일반전선을 사용한 결과로 확인됐다”며 “경험이 없어서 아주 기초적 문제를 실수한 것인데 이번에도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국과 러시아가 공동 개발한 2단 발사체 나로호는 2009년 8월 첫 발사 시도 때 페어링이 한쪽만 분리돼 실패했다.
권 교수는 “명백하게 설계 착오가 확인된 것이어서 차라리 낫다. 비교적 단순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본다”며 “원인을 찾는데 몇 달 걸렸으면 더 큰 문제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동준 동아사이언스 기자 bios@donga.com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