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소득의 30%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낸다고 생각해봐라. 어느 국민이 버티겠나. 먼 미래의 일이 아니고 우리 청년세대가 겪게 될 일이다.”
최근 사석에서 만난 소장파 연금 전공 학자 A는 한숨부터 쉬었다. 수년 만의 조우였지만 근황 이야기도 건너뛰고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 개혁에 침묵하는 대선 주자들의 비겁함에 대한 이야기로 점심시간이 꽉 채워졌다. 그는 “지금 당장 개혁해도 문제가 심각한데, 그대로 두면 약 30년 후엔 연금 적자에 의한 국가부도를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A의 말처럼 국민연금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학계, 정부뿐 아니라 정치권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단지 ‘먼 미래의 위기’로 치부하며 ‘어려운 숙제’를 미루고 있을 뿐이다.
일부 학자는 기금이 없어도 서유럽처럼 세금(부과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부과방식으로 운영하려면 2050년 보험료율을 20.8%, 2060년 26.8%까지 올려야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국민연금 개혁 없인 보험료가 현재(9%)의 2∼3배까지 오른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이 추계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것. 4차 재정계산은 2020년 합계출산율을 1.24명으로 가정했지만, 현실은 0.84명까지 떨어졌다. 미래 보험료를 낼 사람이 적어진다는 의미다. 제대로 추계하면 보험료가 30%대(국회 예산정책처)까지 늘어난다는 전망마저 나온다.
‘복지의 천국’ 핀란드도 비슷한 상황이다. 핀란드연금센터에 따르면 출산율이 1.45명으로 유지되면 미래 보험료가 30% 수준으로 버틸 수 있지만 1명까지 떨어지면 보험료를 37%까지 올려야 한다.
재정적자는 또 어떤가. 비교적 ‘낙관적인’ 정부추계만 봐도 2060년 한 해만 국민연금으로 인한 적자가 327조 원, 2088년 782조 원에 이른다. 내년 정부 예산(604조 원)보다도 큰 액수다. 2088년까지 누적적자가 1경7000조 원에 이른다는 전망도 있다. ‘경’ 단위의 적자 규모가 상상조차 잘 되지 않는다.
국민연금은 청년세대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다. 연금개혁을 뺀 ‘청년 공약’은 그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청년세대가 향후 소득의 30%를 연금 보험료로 떼일 수 있단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몇 푼 안 되는 현금성 복지로 무마하려 했던 대선 후보들의 위선에 분노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대선 주자들이 청년들과 연금개혁에 대한 진솔한 대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아직 대선까지는 67일이 남아 있다.
유근형 정책사회부 기자 noel@donga.com